주객전도 (主客顚倒)
주객전도 (主客顚倒)
  • 경남일보
  • 승인 2016.08.0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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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말임 (청주 문인협회 회원)
박말임
새 아파트를 사놓고 입주를 기다리고 있는 김 할머니가 요즘 자주 웃으신다. 원래 목소리도 작고 웃음도 희미해서 일부러 귀기울이지 않으면 도통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는 분이다. 그런데 무언가 심중에 있는 사연을 털어놓으려는 듯 결연한 눈빛이어서 일어서다 말고 다시 김 할머니를 마주해 앉았다.

김 할머니는 20세에 결혼하여 자식을 다섯을 낳았다. 아이가 셋이 태어날 즈음에 남편은 새로운 여자와 딴살림을 차렸다. 마을 사람들은 그 여자를 ‘똥갈보’라고 부르며 쑥덕거렸다. 시어른들은 그런 남편을 남의 일처럼 못 본 체했다. 첩살림 꾸린 남편보다 시어른들과 시댁 식구들이 더 미웠다. 그런데도 여전히 시부모님 봉양은 그녀가 도맡았다. 그래도 명절 때만은 남편도 본가에 얼굴을 비췄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그녀는 아이 다섯을 낳았다. ‘똥갈보’라고 불렸던 그 여자도 아이 넷을 낳았다. 한 마을에서 두 여자가 남산만한 배를 하고 다녔다. 마을 사람들과 마주칠 것이 두려워 먼길을 돌아 피해 다닌 사람은 첩이 아니라 본처였다. 본처는, ‘여자로 태어나 남편의 호적에 오르지도 못하고 자식들도 본처 호적에 올려야 하니, 그 심정이 오죽하겠느냐’고 첩을 ‘불쌍한 여자’라고 했다. 남편은 첩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을 돌보느라고 부모도, 본가의 자식들도 나몰라라 했다. 논 밭뙤기에서 나오는 소출로 식구들 입에 풀칠은 가능해도 아이들 교육비는 마련할 길이 없었다. 본처는 보퉁이를 이고 문전박대를 고사하고 행상 길에 올랐다. 시부모가 사망하자, 남편은 논밭을 팔아 전라도 광주로 첩의 식솔을 거느리고 떠났다. 본처도 자식들 교육을 위해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 장사 밑천이 없어 소금 두어 되로 장사를 시작하여 뼛골이 빠지게 장사를 해 자식들을 교육시켰다.

김 할머니가 결혼한 지 50여년이 된 2016년 이 시점에서 두 여인의 삶은 이렇다.

조강지처 김 할머니는 홀몸으로 다섯 자녀를 건사하느라 팔십에 겨우 집 한 채를 장만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살았느냐고, 남편이, 자식이 보상해 주더냐고 물었다. 반면 ‘똥갈보’라고 불렸던 첩은 사람들의 비난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 호적이 미혼인 채여서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생활비 지원금을 받고, 영구임대 아파트에 입주하여 살고 있다. 김 할머니 남편의 사랑과 보호 속에 편안한 여생을 누리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복지’의 실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김 할머니의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는 그 얼굴에 어려 있는 저 여유로움은 대체 뭐란 것인지.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박말임 (청주 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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