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06)
양지는 순간 당황했다. 뭐라고 현태를 설명해야 하나.
“엄마가 봤어?”
“응, 똥묏등에 둘이 있데”
“초등학교 동긴데 내가 온 걸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
“일부러 온 손을, 이 춘날 산에는 뭐 하러 데꼬 갔노. 집으로 들어와서 따신 물이라도 대접해서 보내제”
“참 엄마도, 유부남을 집에까지 데리고 왔다가 동네 사람들 눈에 띄면 뭐라고 또 소문이 나게”
그래도 명자가 보인 연극 같은 짓은 못 본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엉뚱한 말로 얼른 둘러대 놓고 어머니의 곁을 벗어났다.
무심한 동작으로 빨래를 널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는데 그 눈길에는 저만 아는 미안함이 실려 있다. 어머니에게 만약 자신이 기댈 수 있는 막강한 힘이 있었다 해도 사사건건 이렇게 어머니를 제외시켰을 것인가, 자문을 했다. 그러나 역시 그럴 수밖에는 달리 상처만 받으며 살아 온 어머니를 보호할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며 선뜻 마음 걸리는 미늘을 벗겨냈다.
어머니를 입원시켜 놓고, 양지는 심경이 한결 정리되고 차분해진 것을 느꼈다.
회사에도 휴직원을 냈다. 가여운 어머니를 위해 같은 여자로서, 그녀의 살을 찢고 나온 자식으로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수발을 성의껏 다하는 방식으로 최선이라 여겼다. 직장생활과 간병을 같이 할 수 있게 택한 병원이었지만 여차하면 사직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심각한 상황임을 양지는 이미 알고 있다.
미스 김이 어제 부로 사표를 냈다고 하양이 말했다. 벌쭉 묘하게 웃으며 신부수업 한대요, 묻지도 않은 말까지 덧붙였다.
추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형식상이나마 병훈네의 동정을 들어볼까 했으나 중병으로 입원해 있는 어머니에게 예가 아닌 것 같아 그만 두고 은행에 가서 적금 해약을 했다. 말기 암 환자인 어머니를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궁리하다가 이제 계획한 일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려는 것이었다.
“오 개월만 더 부으시면 멋있게 목돈을 찾을 건데요.”
오래 드나들며 낯익은 은행 아가씨가 아쉬운 듯 말하며 온라인 통장을 만들어 주었다. 이제 병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께로 돌아가기 앞서 여행사에 들러 제주행 비행기 표를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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