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그립다
그들이 그립다
  • 경남일보
  • 승인 2016.08.08 15: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세핀 김 (미국 LA거주 교포)
조세핀 김
미국 LA부근에 오랫동안 살다가 인디애나 주 포트웨인으로 이사해 3년 정도를 산 적이 있다. 포트웨인은 인디애나 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도시였는데 LA보다는 인구도 작을 뿐더러 도회지 느낌도 달랐다. 농토가 많아 옥수수와 콩·밀 농장이 줄지어 있고, 규모가 너무 커 차를 타고 몇 시간이나 달려도 녹색농장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는 200여 명가량의 한인들이 20∼30분 거리를 두고 한두 집씩 띄엄띄엄 살고 있었다.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미국인과 국제결혼을 하신 분들로 나는 그곳에 살면서 그들과 자주 접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우리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자동차로 3시간이나 걸리는 시카고지역 한국마켓에까지 가서 맛있는 음식을 사먹기도 하고 생활용품을 사오기도 했다. 그들은 아귀찜이나 김말이, 회덮밥 등 한국 있을 때 접해보지 못한 음식을 사먹으며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돌아오는 길에 한국 아이스크림이라며 ‘싸○코’ 하나씩을 입에 물고 신기해하며 이야기 꽃을 피우며 돌아오곤 했다.

사실 그들은 타향에서 젊은 시절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란 한국인들인데 지금은 새로운 땅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개척하면서 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정을 주고받는 것에 익숙지 않아서인지 그들은 우리에게 등을 돌렸다. 왜 갑자기 그랬는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LA부근으로 되돌아오게 됐다. 그후로도 나는 ‘그들은 왜’라는 물음을 한참동안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했다.

최근에서야 비로소 그분들의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들은 마음을 주고도 싶고 받고도 싶지만, 저 깊은 기억 어딘가에 각인된 두려움이 등을 돌리게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언젠가는 나에게서 떠나가 버릴 사람이고, 또 그 일을 감수해야 할 아픔이 남을 것이기에 차라리 먼저 외면하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미쳤다. 정을 주고 싶은데도 막아서는 그 기운이 싫고, 스스로가 미우면서도 어찌 해볼 수도 없는 습관적인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한사람 안에 자리잡은 상처들은 시간이 많이 흐르고 장소가 바뀌어도 결코 지워질 수 없고 그 뒷모습에서 언뜻 보이는 그 사람의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조세핀 김 (미국 LA거주 교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