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0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08)
  • 경남일보
  • 승인 2016.07.2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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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208 사본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08)



이름도 모양도 처음 대하는 진귀한 과일들을 하나하나 들어내다가 마침내 손에 잡히게 될 두툼한 봉투.

“엄마한테 가져가려고 모았던 돈이야. 엄마가 또 돈 걱정할까봐서 미리 가져 온 거니까 엄마 마음대로 써도 돼”

어머니는 어쩌면

“우선 새 다리가 나중 쇠다리보다 나은데 너무 늦었어”

속으로 그 동안의 무심함을 야속해 할지도 모른다. 아니, 피땀 흘려서 모은 이 돈을 나는 받을 자격 없다고 완강히 거부할 것이다. 아무튼 양지는 제 생에 가장 큰 금액으로 환산된 노력의 결정을 어머니께 돌려드리는 것으로 언젠가 한 번은 하면서 미루어 온 애정 표시를 하고 싶었다. 비록 명자처럼 벼락부자는 못되지만 제 능력으로 차곡차곡 쌓아 온 학벌이며 직함이며 자금까지 모두 갖다 바치며, ‘나 좋아하는 이런 사람 있는데 나도 결혼 할래요,’

어머니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게 되었다면 더 바랄게 없었겠지만 말이다.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오층 복도를 돌자 문 앞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가 양지를 보자 마주 일어섰다. 웬 일로 기다리고 있던 초조함이 비로소 가시는 얼굴로 어머니는 양지의 앞으로 마주 걸어왔다. 환자복을 벗고, 올 때 입었던 옷을 얌전히 챙겨 입고 있었다. 어머니는 무슨 일이냐는 양지의 놀라움에는 대답을 않고 아무도 없는 복도 끝으로 손을 끌고 갔다.

“아무래도 집에 한 분 댕기 와야 되것다”

“집에는 왜?”

닭도 돼지도 나만 바라고 배곯고 있겠다고 애태우며 이틀을 묵지 않고 돌아가던 어머니의 성격을 양지는 안다. 필경 사료값 때문일 터였지만, 겨울에는 안기르겠다 얼버무리던 빈 가축우리를 떠올리며 반문했다.

“또 아버지 때문에? 엄마가 지금 다른 데 신경 쓸 겨를 있어? 나 모르게 돈도 전하고 왔잖아”

양지의 패악스러운 대꾸에도 굽히지 않고 어머니는 얼마나 벼르고 정리해 두었던 말인지 말문을 열자 막힘도 없이 평소답잖게 단숨에 털어놓았다.

“그기 아이고, 내가 이리쿠모 니는 또 미신이라꼬 팔딱 뛸 끼다만, 아무래도 니 셍이 해원 굿을 한 분 씨언씨리 했시모 내 맴이 깨운 하겄다. 요 근래 들어서 눈만 감으모 니 셍이가 어찌나 눈에 볿히는지. 엊저녁에도 한 숨 못 잤다”

순간, 가슴 한복판으로 날카로운 통증이 지나갔다. 흉기가 될라 숨겨놓았던 칼이 벌겋게 녹조차 슨 흉측한 살기를 품고 불거져 나온 것을 목격한 으스스함이었다. 그러나 그대로 감정에 충실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섰다. 어머니를 쏘아보다가 양지는 표독스럽게 잘라 말했다.

“엄마가 맘이 약해져서 그렇지. 언니 죽은지가 벌써 언젠데 그딴 소리고. 뒷 탈 없이 잘한다고 몽달귀 중매해서 영혼결혼식도 시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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