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0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09)
  • 경남일보
  • 승인 2016.07.2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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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09)

“그렇기는 했지만 내 마음은 평생 무겁고 죄인 아이더나. 호냄이 정냄이 저것들한테 무신 일이 있다카모 내사 그만 간이 철렁 떨어진다. 니 셍이가 동생들 해코지할 사람은 아니라 캐도 사람이 유명이 바뀌모 지는 좋다꼬 씨다듬는 기 산사람한테는 해가 된다 안카나. 사람한테는 심령이 구십푸로라꼬 마음이 개운해야 약을 묵어도 약발을 받고 수술도 잘 안되겄나 싶으다. 야야, 번거롭지만 이 에미 부탁 한 분만 들어 도고. 내 다시는 니 성가실 그런 부탁은 안 하꾸마. 그리만 하고 나모 내 마음이 날아갈 듯 깨운 할 것 겉고 니나 호냄이 정냄이나 하는 일마다 척척 잘되고 앞으로는 우환재책 없이 모두 잘 풀릴 것 겉다. 병자 맴이 깨운 하모 수술도 약발도 잘 받을 듯 싶으고.”



달래듯 조르듯 사뭇 어리광 섞인 어조로 길어지는 어머니의 애원을 듣고 있는 동안 양지의 마음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배가 아프면 소금 한 줌을 먹고 바늘로 사관을 틔우는 원시적인 건강법을 빈번이 행해 온 어머니에게 전신마취를 한 대수술, 그것도 목숨처럼 생각해 온 여자의 상징인 자궁, 그 육신의 깊은 곳을 선뜻 절취해서 없애는 일은 어떻게든 지연시키고 싶은 복잡한 심정일 게 당연했다.

양지는 어머니의 손을 부드럽게 싸쥐며 타이르듯이 말을 건넸다.

“엄마, 엄마는 굳세고 참을성 있는 사람이잖아. 외국에서도 인정해 주는 권위 있는 박사들이니까 마음 푹 놓고 한 숨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해결돼 있을 거야. 엄마를 괴롭히던 고통덩어리, 무슨 미련 애착이 남았어. 이참에 깨끗이 제거해 버리고 엄마도 한 번 구속 없이 자유롭게 살면 되잖아”

“인생 한 분은 죽는 기 정칙인데, 그까짓 죽으모 썩어질 육신이사 뭐…. 혼기도 넘찬 딸 자슥 짝도 못 지아 준 에미가 또 짐만 지우게 돼서 면목은 없다만, 내 마지막 부탁이다. 이 죄 많은 에미 소원 한 번 들어 도오. 니 셍이 생목숨 끊어놓은 걸 생각하모 앞앞이 말 몬하고 내 속에 피가 지는 거 누가 다 알 끼고”

어머니는 기어이 상의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가로 가져갔다. 코맹맹이소리로 어머니의 작심은 다시 양지를 물고 늘어졌다.

“에미 애비 무식하고 집구석에 운이 없는 거는 안치고 죄 없는 자석만 병신 맹글어서 족치다가 그리 쥑인 걸 생각하모 평생 죄 때 한 번 몬 벗고, 청천일월 보기가 부끄러버서, 그래도 모진 게 쌩목심이라서 목구녕에 밥을 퍼옇고 살았제”

이미 마음의 결정을 굳게 다진 어머니는 양지의 응낙을 받아내기 위해 밀어 붙일 수 있는 데까지 밀어붙일 태세였다.

어머니는 수술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해원 굿을 원한다고 했다. 전 같으면 뭐한다고 이중 돈 쓸 거냐며 비용이 낭비되는 일은 스스로 반대 했을 어머니인데. 양지는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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