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같은 사랑
약수같은 사랑
  • 경남일보
  • 승인 2016.08.16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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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핀 김 (미국 LA거주 교포)
조세핀김
"밤 근무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둘째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는데 새하얀 첫눈이 내렸다” 아버지는 아직도 내가 태어났던 50년 전 초겨울을 생생하게 전하며 그 당시 기쁨의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 말을 들을 때면 담장 아래에서 따스한 봄볕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어른에 대한 동경과 그 커다란 그늘이 아버지를 더 커다랗게 올려다보게 만들곤 했었다. 그래서 무작정 아버지가 좋았다.

그런 아이가 조금 컸을 때 아버지에 대한 기억 두 가지가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연탄가스를 마셔 사경을 헤맸는데 아버지는 나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희미한 의식 속에서도 울면서 이름을 애타게 부르던 목소리와 땀에 젖어 축축해진 아버지의 등이었다. 또 그 아이가 더 커서 먼 타국에 시집가는 날 아버지는 부엌이며 거실, 내 방을 둘러보며 눈물을 흘리셨다.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웠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나는 봤다.

이제부터 울타리도 커다란 등도 없이 홀로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를 여식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가슴 저린 눈물이었으리라. 그런 뒤 아버지는 내가 있는 미국으로 와서 살고 있다. 외람되게도 먼 타국에 살면서 느끼는 것은 인생이 기대했던 만큼 평탄하게 흘러가는 게 아니었고, 살면 살수록 늘 목이 마르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빠른 세월을 타고 정신없이 쓸려오다 보니 어느덧 내가 시집오던 그때의 아버지 나이를 넘어선 나이가 되었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지나고 젊음의 시절을 보내고 나서 중년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 당시 아버지의 모습과 마음이 느껴진다.

나는 요즘 아버지의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는 약수라는 생각을 한다. 저 깊고도 높은 곳에서부터 시작되어 마른 목을 축여주는 달고도 단 약수. 그런 아버지의 약수를 당연한 것으로만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내 목으로 받아 넘기기만 하고 살아왔다는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것이 이 세상 단 하나뿐인 달디 단 사랑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그런데도 나는 자식들 일이라면 만사 제쳐두고 한달음에 달려가면서도, 아버지의 전화가 오면 바쁜 일 끝내고 받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늑장을 부리곤 했었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아버지가 살고 계신 곳 근사한 식당으로 가 맛난 음식을 나누며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을 전해야겠다.
 
조세핀 김 (미국 LA거주 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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