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1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17)
  • 경남일보
  • 승인 2016.08.1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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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17)

그러나 그것은 들키면 동티가 나는 물건이었기도 했다. 운명은 이미 그런 비극적인 행로 위에서 연출되고 있었던 것을. 뒤늦게야 들키면 안 될 물건을 어떻게 헛간수하여 어린애의 눈에 띄게 했을까, 그런 나무람을 가져 본들 지금은 아무 소용도 없는 옛날 일이었다.

한편의 드라마를 보듯이 양지는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다시 상기해 보았다

.손에 들린 소년 아버지의 낫이 툭 떨어졌다. 확인 안 된 일이기는 해도 왠지 직감이 불길했다. 어미 없이 홀아비 손에서 자란 남매였다. 자신도 어머니 없이 젖동냥을 얻어먹으며 다른 여자들의 손에서 자랐기 때문에 누구보다 뼈저린 애정의 갈망을 이해했다. 하므로 그가 기울인 아들딸에 대한 사랑은 자별했다. 그런 연유로 아이들은 편부의 자식답지 않게 잘 자랐다. 특히 딸아이 화진은 이웃이며 어른들의 친구 간에 서로 사돈 삼자고 조르는 바람에 택일이 난감할 정도로 음전했다.

병으로 제 어미를 잃은 여나므살 때부터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바느질 솜씨 음식 솜씨를 비롯한, 여러 가지 여성으로서의 진가를 탁월하게 발휘했다. 게다가 달덩이 같은 용모며 후리한 궐대까지 팔등신으로 갖추었다. 자신의 눈으로도 저게 과연 내 자식인가 싶을 정도로 남의 혼을 산란케하는 출중한 매력도 지니고 있었다. 고민이 있다면 저 아까운 자식을 남에게 빼앗기고 허전해서 나는 어떻게 사나, 딸아이의 나이가 들어 갈수록 그의 가슴은 벅차며 쓰라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 딸자식 둔 부모들의 운명이었다. 제 임자 만나서 가문을 욕 먹이지 않고 무탈하게 살아주면 그것이 친정부모에게는 효를 다하는 것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을 그 역시 물려받은 대로 되새기며 위안 삼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눈앞에는 흑요석을 다듬어서 만든 것 같은 딸아이의 서글서글한 눈매가 선연히 떠올랐다.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쐐액 돌아가는 입술 가에 살짝 들어가는 볼우물도 청초한 그 애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아, 이 무슨 망상인가’

아버지는 세차게 자신을 부정하며 머리를 저었다. 아직 세상에서 그 애처럼 얌전한 규수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를 못했다. 하다못해 남새밭에 부추를 베러 가도, 이웃에 잠시 나가도 들면 들었다 나면 나겠다 일일이 보고를 하고 다니는 착실한 아이였지 않은가. 아, 아, 그러나 사람의 일이란 모른다. 더구나 젊은 애들의 이성지합이란.

현장을 어서 확인하고 싶은 조급증에 아버지는 몇 번이나 서쪽 하늘에 지는 해를 올려다보았다. 그보다 더 쉽고 빠른 방법은 지금 당장이라도 집으로 내려가서 화진을 추달하면 될 것이지만 막상 현실로 드러났을 때의 실망과 절망을 그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왜 이렇게 내 자식은 아니라는 확신이 흐려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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