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2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20)
  • 경남일보
  • 승인 2016.08.1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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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20)

할아버지도 처음에는 감격의 눈물을 머금었다 했다. 이는 하늘이 필시 아비의 노심초사를 굽어 살피심일 거라고 조상이나 천지신명에게 감사했다. 아무리 유능한 매파를 동원한다해도 지금의 가세로는 감히 꿈도 못 꾸어 볼 상대였으므로 너무 과분하고 기뻐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할아버지는 서둘러서 의령에 있는 처가댁으로 통기를 보내 외가에 간 화진이와 그곳 청년이 눈 맞았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쪽 가문에 대한 수탐을 의뢰했다.

아무리 과분한 사윗감이라해도 정분난 젊은 남녀를 그대로 인정하고 혼사를 치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매파를 통해 사주단자를 주고받으며 기구 차리고 떡 벌어지게 예를 올리는 게 홀로 키운 딸에 대한 할아버지의 애정이고 의무였던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갖추고자 했던 격식은 엄청난 지름길로 비극을 부르고 말았다. 동경 유학생 그 청년의 집은 소문난 불가촉천민의 집안이었던 것이다.



“엄마, 그만 둬요. 더 듣고 싶지 않아. 토할 것 같애”

양지는 그때 도리질을 하며 어머니의 말을 잘랐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쏟아 붓기 시작한 내용물처럼 어머니의 이야기는 단박 잘라지지 않았다.

“양반, 양반해도 너거 집 모양으로 그리 양반을 찾는 집이 어데 흔할꼬. 너거 셍이도 너가부지 양반타령에 눌리서 그리 됐는데 그 시절은 또 좀 더 들시기 아이가. 왜놈들이 들어오고 개명이 많이 됐다 캐도 시퍼렇게 반상은 더 살아났는데 언감생심이었제. 백정은 죽으면서도 버들잎을 물고 죽는다꼬 인종지 핫질로 쳤응께”

“요즘 같으면 도축장 업이나 정육점 아냐. 그렇게 좋은 가훈을 가지고 수신제가 하는 사람들한테 무슨 직업의 귀천을 따지겠어”

“그러케 세상말세라서 반상의 법도가 더 지엄했다 안 카나”

“말하는 것 보니까 엄마도 은근히 편들고 있어”

“편들기야 무인 편을. 때가 그랬은께 그리 제 맘대로 하기 에럽었다 카는 기제”

“그게 소위 양반네들, 머리에 먹물 들었다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었으니 나라가 안 망했다면 이상했지”

“양반이라꼬 다 그런 건 아이다. 니가 아는 외삼종 종철이네 삼촌도 그런 사람들 편들다가 난리 맞은 사람들 아이가. 형평 운동인가 뭔가 백정들 해방시키서 사람대접 받고 살도록 해준다꼬 온 읍내가 들썩들썩 했디라. 뒤에 들으니 의령 그쪽 너거 고종오빠 집안 사람들도 활동을 같이 했다카데”

“에나 종철오빠네 할아버지가 그런 운동을 했어? 사람 위에 사람없고 사람 밑에 사람없다. 형평운동이 바로 그런 운동이거든. 종철오빠네 사람들, 우리 외갓집 사람들도 그렇고 고종오빠도 다시 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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