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움직일 수 있다” ‘生’의 목소리
“괜찮다, 움직일 수 있다” ‘生’의 목소리
  • 정희성
  • 승인 2016.08.29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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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건물 붕괴 현장 1명 극적 구조
 
28일 밤 11시 40분, 수색을 시작한 지 12시간이 지날 무렵이었다. A씨(55·현장소장)가 한 시간 전 숨진 채 발견된 후 구조대원들의 체력은 서서히 떨어졌고 마음은 더 조급해 졌다. 그 때 구조에 동원된 구조견 ‘앤디’가 첫 매몰자가 발견된 곳에서 2m 남짓 떨어진 곳을 향해 짖기 시작했다.

소방관은 ‘누군가 있다’라고 직감했다. 무너진 천장 아래에 깔린 장애물을 치우면서 좁은 공간이 보였고 그 곳에서 인기척이 났다. “누가 있습니까”라는 소방관의 외침에 B(45)씨는 “○○○입니다”라고 답했다. 소방관들의 움직임은 더욱 바빠졌다.

소방관은 B씨를 안심시키기 위해 계속 말을 걸었다. “괜찮냐”는 물음에 B씨는 “괜찮다. 움직일 수 있다. 허리가 아프다”라고 답했다. 이어 다른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혼자다”라는 답이 들려왔다.

구조대원들은 B씨가 2차 피해를 입지 않게 계속 말을 걸며 주위의 잔해를 하나씩 하나씩 치워나갔고 마침내 14시간의 사투 끝에, 29일 새벽 1시 B씨를 극적으로 구조했다. 들것에 실려 바깥 세상으로 나온 B씨는 청바지에 체크무늬 난방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소방관들에 따르면 B씨는 구조 당시 “작업 도중 잠시 담배를 피우려고 벽 쪽으로 갔다. 그 순간 무너졌는데 다행히 공간이 생겨 살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슬래브 지붕이 무너져 내렸지만 30cm 정도의 ‘보’가 지붕을 받쳐줘 그 공간에서 14시간을 버텼다.

B씨는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고 응급실에서 그리운 가족의 품에 안겼다.

병원에는 부인과 중학생 딸, 형과 친척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을 면회하고 나온 부인 G씨는 “남편이 저를 보자말자 ‘안전모 때문에 살았다’는 말을 했다”며 “‘무거운 돌덩이가 허리를 눌러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는 말도 했다”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B씨의 한 지인도 “천운이다. 무너진 건물을 보고 ‘영영 이별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기적적으로 살아와서 기쁘지만 호형호제하던 형님(현장소장)이 숨져 안타깝다”며 고개를 숙였다.

B씨의 생존에 구조대원들은 희망을 가지고 수색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29일 새벽 2시 30분 안팎. C씨(43)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고 새벽 3시 18분 구급차를 통해 장례식장으로 옮겨지면서 그렇게 구조작업은 마무리됐다.

16시간 넘게 진행된 수색작업에는 진주소방서를 비롯해 사천, 산청 등 인근 소방대원 174명, 119 중앙구조본부 영남특수구조대(대구) 대원 9명, 경찰관 72명, 시청공무원 72명 등 370여 명이 동원했다. 특히 은퇴를 앞둔 8년차 베테랑 구조견 ‘앤디’가 생존자 구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붕괴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색 작업을 펼친 한 소방관은 “생존자를 구조할 수 있어 보람이 있었지만 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한 데 대해서는 너무 안타깝다”며 “앞으로도 재난현장에서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는 지난 28일 오전 11시 4분께 진주시 장대동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4층 건물에서 발생했다. 이 건물 3층에서 리모델링 작업을 하던 중 3층 천장과 4층의 옥탑방이 무너져 내리면서 인부 3명이 3층에 매몰됐으며 2명이 숨졌다. 또 현장에 함께 있었던 인부 D씨와 택시기사 2명, 옥탑방에 있던 10대 S군 등 4명이 부상을 당했고 건물의 추가 붕괴위험으로 1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정희성기자 raggi@gnnews.co.kr



 
생존자를 찾는데 역할을 한 인명구조견 ‘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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