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2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22)
  • 경남일보
  • 승인 2016.08.11 2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22)

그러나 할아버지는 딸의 뜻을 묵살한 채, 다른 곳에다 서둘러서 혼처를 정했다. 화진이 아무리 애원하며 딸자식 하나 없는 셈 치면 멀리 기도 망도 없는 곳으로 가서 평생 가문의 누 끼치는 일 없이 묻혀 살겠다고 애원을 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부랴부랴 혼처를 정해놓고 화진에 대한 아버지의 감시는 더욱 철저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절망에 빠져서 몸져누웠던 화진이 조금씩 음식을 먹고 집안일에 손을 댔다. 인당수에 빠져 죽으러 가는 심청이가 그랬다듯이 아버지와 동생의 사철의복을 손질해서 차곡차곡 농 안에 넣어두는 것은 물론이며 장독간의 건개도 알뜰하게 장만하고 봉해서 먼저 먹을 것 뒤에 먹을 것을 차례대로 놓아두었다. 이별을, 그것도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의 행동은 어디가 달라도 달랐을 것이건만 자기 식의 생각에 경도 되어있던 아버지는 화진의 이런 행동에 대한 의심을 조금도 품지 않았다. 거저 다른 젊은이들 보다 효성 깊은 자식이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고 제 사랑을 단념한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혼처가 다소 기우는 곳이기는 하지만 시집가서 살다보면 처녀적의 아지랑이 연정은 자식 낳고 충실히 사는 동안 잊어지는 한때의 꿈같은 것으로 해석을 내렸다.

그 정도로 수습이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긴 아버지는 혹시 바람결에 소문이 흘러 시집살이라도 혹독하게 하게 될까 염려하여 힘닿는 대로 최고의 혼수를 마련하여 시집의 환심을 사주리라 작정했다. 그러나 진주 읍내도 안돼서 마산 부산 포목점까지 사람을 보내서 값비싼 혼수품을 구해 들여도 화진의 얼굴에 덮인 침음한 기색은 걷히지 않았다. 마음에 걸렸으나 그것까지 아비의 엄명으로 어쩔 수는 없었다. 이나마라도 수습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아쉽다면, 홀아비 처지로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웃으면서 흔쾌하게 보내고 떠나지 못할 당일 날의 이별장면이 벌써부터 마음 한 구석을 에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혼인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날, 아버지는 화진으로부터 한 번만, 딱 한번만의 소원을 들어달라는 앙청을 받았다.

“매인 몸 되기 전에 외조모님과 하룻밤을…”

아버지는 이 뜻밖의 제안에 가슴이 덜컹했다. 그 녀석을 못 잊고 있음이리라. 그 천하에 상것과 엮어질 뻔했던 것도 어미 없이 자라는 오누이가 안쓰러워서 어미 본 듯이 외조모님의 사랑을 먹고 오너라, 거기만은 너그럽게 출입을 허락했더니 애맨 분란만 야기시키지 않았더냐. 지난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카락이 쭈삣 서는 것 같아진 아버지였다. 그러나 여자란 한번 시집가면 그만이다. 그 나마라도 자유가 있는 곳은 친정집뿐이다. 그 마지막 자유마저 불허하면 정말 죄지은 아비가 될 것 같아 승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전처럼 저희 남매만 그냥 보내지는 않았다.

“그리해라”

아버지는 선걸음에 다녀 올 참이었으나 화진은 준비가 굼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