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2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23)
  • 경남일보
  • 승인 2016.08.11 2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23)

“후딱 댕기 올 낀데 뭘 그리 오래 걸리노”

옷을 갈아입고 꼼꼼하게 방안정리를 하고 나온 뒤 온 집안을 둘러보는 화진의 눈길은 비장했지만 아버지는 눈치 채지 못했다. 갈아입은 헌 옷을 자배기에 담아놓고 빨래가 잠기게 가득 물을 채운 것도 나름대로 계산된 행동을 한 것이다.

아버지는 딸을 데리고 처가에 도착하여 처가식구들과 그 간의 인사를 나누었다. 딸자식의 흠을 숨기고 진행하는 혼사라 은밀하게 주고받을 말도 있었다. 그렇지만 화진이 워낙 빼어난 신부감이니 저만 잘 하면 온갖 흉도 소나기에 먼지 가라앉듯이 가라앉으리라 어떻게 하든 저쪽 집 귀에만 들어가지 않게 해야된다는 이러저러한 논의도 화진의 외조모와 외숙들의 입에서 모아졌다.

한참 이런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있을 즈음 술상을 차리느라 밖에 있던 처남댁의 자지러진 비명이 들렸다. 빠른 직감으로 솟구친 아버지가 먼저 달려 나갔다.

화진은 그새 두엄간의 보꾹에 둥실 떠서 혀를 베물고 있었다.

꺾여서 주져앉았던 무릎을 간신히 편 아버지가 끌러내려진 화진의 주검 곁으로 다가갔다.

“에이, 요망한 것! 애비를 쎅있고나!”

시체가 된 딸의 뺨을 찢어져라 거칠게 후려친 아버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처가를 떠났다.



고모는 결혼도 안한 처녀고 죽었는데 고종은 무슨 고종이냐고 물으려는데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수의를 갈아입힐라꼬 본께 온 몸이 베로 칭칭 감기 있더란다. 설마하면서도 엉겁결에 몸에 감긴 필베를 풀었더니 글씨, 막힜던 숨통이 터진 드끼 불쑥불쑥 태동이 일더란다. 죽은 에미 뱃속에서 꼬치가 쫑긋한 머스마가 꼬물기리고 있더라안카나. 아무도 모리게 그 사람들이 지은 절로 언내를 보냈더란다. 그런데 참 인연 그게 무엔고, 저거 아부지는 자슥이 없고…. 대를 이을라카니 하는 수 있나. 큰시님 밑에서 자랐다카더마 사람이 모가 없고 배포가 커. 지가 찾아와서 외숙이라 부름시로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꼬 말을 하니 알았제 그리 안 하모 어느 절에 묻히서 시님으로 늙어가는 줄 뜬 소문이나 듣제 우리가 우찌 알끼고. 사주팔자는 몬 쎅이는 거라 머리 기룻고 칼잽이 됐다꼬 허허 웃더라”

양지는 뒷날 고종오빠 장현동으로부터 자신이 말로만 들었던 진주 지방의 형평운동사에 대해 더 깊은 상식을 갖게 된다. 고종오빠 그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명분을 내걸고 전국에서 처음 일어난 백정들의 인권운동은 직접적인 그의 개인사와 맞닿아 있어 더욱 뜻 깊고 가슴 저리는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