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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95)<155>철새처럼 고향에 와 머물다 가는 시조시인 김호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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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01  22: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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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길은 이번 유심작품상을 받은 소감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내가 내린 모든 결정은 나 스스로 한 걸로 생각하고 그냥 밀어붙이며 살아왔다. 졸시의 구절처럼 ‘눈 먼 무소가 되어 뿔 하나/ 허공을 가누고 / 제 그림자 더불어 달려라!’ 그렇게 달리고 달리다가 엎어지고 뒹굴고 다시 일어났다가 쓰러지고 아직 살았구나, 또 오뚝이처럼 우뚝 일어서서 달려왔다. 몇 십 번이고 쓰러졌지만 용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래서 몇 십 년만인가, 이제 사막 꽃동산에 접어들었고 황금빛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스스로의 역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제14회 유심작품상 수상문집 속에 들어있는 시조부문 심사위원은 김제현, 이지엽, 홍성란 시조시인이 맡았는데 그 심사평은 홍성란 시조시인이 대표 집필했다. 그 내용에 김호길의 시조로 살아온 일생이 세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필자가 알고 있는 친구로서의 김호길에 관한 것보다 훨씬 정밀하다. 이쪽의 글로서는 가히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김호길 시인은 멕시코에 살며 세계의 한민족 농업 분야의 거목이 된 현역 비행사 농부 시인이다. 그의 이력을 언급하는 것은 시적 주제가 곧 시인 자신이며 시적 대상이 곧 떠돌이 시인의 비애와 고군분투의 인생 역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 역정에는 ‘작파’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공들여 해오던 일을 여반장으로 작파하고 신대륙의 첫발을 딛는 심정으로 ‘다시 시작’을 주저없이 감행한다. ‘필사의 도전 정신’이다. 그런 도전 정신과 가늠할 수 없는 열정으로 시인은 잘 나가던 항공사를 사직하고 1981년에 도미, <미주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서 미주한국문인협회를 발족시키고 사무국장직을 맡아 ‘미주문학’ 주간으로 활동한다.

이후 1984년에는 멕시코 바하캘리포니아 라파스 지역에 진출하여 국제영농에 뛰어들며 파란만장한 삶을 온몸으로 코뿔소처럼 뒹굴며 살아낸다. 그 시절의 대표작이 지금까지 단 한 편 창작한 사설시조 <사막 송장메뚜기>다. 사막이라는 척박한 생존 현장은 독수리처럼 비정하고 ‘코요테’처럼 사악하고 잔인하여 ‘몸 붙일 곳 없는’ 이방인은 몸 낮춘 수신의 자세로 모진 추위와 갈증을 견디어 왔다. 그런 고난의 삶 한가운데서도 그는 미주시인협회를 발족시키고 ‘시조월드’의 전신인 ‘해외시조’를 발간했으며 세계한민족작가연합을 설립하고 ‘한민족네트워킹’을 시작했다.

국제 영농인으로 살며 ‘하느님과의 동업’이 만만치 않아 온갖 고난을 겪어온 시인은 지구촌 시대에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발양하는 유일한 대안은 어린이시조 교육이라는 신념으로 이를 실천하기 위해 뜻있는 분들과 세계시조사랑협회를 조직한다. 이러한 각성과 실천을 이끌어온 저력은 1965년 서벌, 박재두, 김교한, 조오현, 선정주, 김춘랑, 이금갑 등과 신시조운동을 하겠다는 취지로 ‘율’동인을 조직하고 창립멤버로 활동해온 내력과 무관하지 않다.

지나고 보면 어제든 시작은 미미하나 그 끝은 창대하다는 말을 새길 수 있다. 김호길의 생애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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