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치밭목 마지막 산장지기 민병태씨
지리산 치밭목 마지막 산장지기 민병태씨
  • 김귀현
  • 승인 2016.08.29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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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조난자 구조 마치고 임대계약 끝난 대피소 떠나
▲ 지리산 치밭목 대피소 ‘마지막 산장지기’ 민병태 씨.


지리산 천왕봉에서 동쪽 4㎞ 거리에 있는 치밭목 대피소. 산 손님들에겐 이름 난 쉼터다.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두메로, 전화 통화는 어림도 없는 곳이다.

이 곳은 그동안 산장지기 민병태 씨가 지켰다. 그는 치밭목 대피소를 일으켜 세운 장본인이자 전국에 3명만이 남은 민간인 산장지기 중 한명이다.

“1985년 4월 처음 치밭목에 들어갔어요. 산 생활은 30년이 넘었지요. 진주서 산 타는 사람들이 호주머니를 털어 만든 곳이 치밭목 대피소입니다. 당시엔 뼈대만 있다 뿐이지 방치된 곳이었거든.”그에게 산장지기란 ‘좋아서 하는 일’이다.

하지만 산꾼들의 휴식처인 치밭목 대피소는 이달부터 추억으로 밀려난다. 그 역시 오랜 터전과 작별해야 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과의 임대계약이 지난달로 만료됐기 때문.

“두부모 자르듯 (감정을) 끊어낼 수야 있나요. 불가항력이니 순응하는 겁니다. 산 아래야 1년이면 서너번 밟을까 말까 했는데….”

민병태 씨의 제1업무는 조난자 구조였다. 대피소 수입원은 등산객들이 쉬어가는 값과 비상식량을 판매한 값. 산장지기는 만성 과로, 산장은 만성 적자 상태일 수 밖에 없었다.

산장 이야기를 잇던 중 “故 함태식 선생은 ‘지리산 호랑이’로 불리지 않았나”고 넌지시 묻자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곧 ‘나는 지리산에 마지막 남은 못된 놈’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민 씨는 “선생님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싫은 소리를 참 많이 했다”며 “어찌보면 고개만 돌려주면 될 것에도 잔소리를 퍼부었다”고 말했다.

‘자기 산도 아니면서’란 말은 예사로 들었다. 불친절한 산장지기로도 소문났다. “이런 데서 어떻게 자냐”는 푸념에 “눈 감고 자야지. 눈 뜨고 자는 놈도 있긴 있더만 했다”고 곱씹었다.

산을 해치는 일만은 참지 못했다던 그가 금세 산에만 살던 때와 지금은 다른 사람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산에 오르기 전 삶을 물었다. 공장 운영, 회사원, 교직 종사, 직업군인 등 줄줄이 튀어나온다. 나이를 묻자 말띠, 예순 둘 셋하고 띠와 숫자를 헤아렸다.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직장 생활 중인 아내와 직장에 입사한 두 딸이 있다고 했다.

민 씨는 “식구들은 고생바가지지. 돈을 갖다주길 하나. 난 고맙지만 가족들 마음이야 잘은 모른다”며 웃었다.

고향은 생초, 유년기를 지낸 곳은 거창, 가족들이 사는 곳은 진주다. 철 없을 적 은사에게 끌려간 산이 평생 터전이 될 줄은 몰랐던 그다. 그동안 산장지기는 책임을 다하느라 술도 마다하며 살았다.

산 외의 이야기엔 속 시원한 답이 없는 듯 했다. 먹고 사는 문제며 ‘어떻게 살 것이냐’는 막 걸음마 단계다.

“요새 인터넷만 들여다보고들 오시는데, 조명구나 비상식량, 바람막이, 물은 무거워도 지고 다녀야 해요. 산을 10년을 타나 20년을 타나 준비가 모자란 사람이 태반이야. 산은 안 봐줘! 아차 하는 순간에 문제가 생긴단 말예요.”

아직은 온통 치밭목에 들를 산 손님들 걱정 뿐이다. 대화 막바지까지 그는 ‘지리산에 마지막 남은 못된 놈’ 다웠다.

김귀현기자 k2@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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