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의도
숨겨진 의도
  • 경남일보
  • 승인 2016.09.0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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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말임 (청주 문인협회 회원)
박말임

2016년 8월. 연일 40도 가까운 폭염이 계속되고 있었다. 해가 떨어지자, 이웃 아저씨 두 분이 우주인을 연상케 하는 복장을 하고 오셨다. 아저씨 한 분이 사다리에 올라가 양파자루를 말벌 집에 덮어씌우고 한 분은 아래쪽에서 가스불을 들여댔다. 습격을 당한 말벌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망 속에 다 가두지 못한 말벌들이 맹렬한 기세로 나를 향해 돌진해 오는 듯 했다. 119에 전화를 하려고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다가 그것도 놓치고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기다시피해서 그곳을 피해 나왔다.

한참 후에 아저씨 두 분이 앞마당으로 나왔다. 자루 속에 든 말벌의 수는 내가 상상했던 거보다 엄청나게 많았다. 아저씨들은 획득물에 만족한 얼굴들이었다. 구경하는 아주머니들과 말벌을 볶아서 잔치를 벌여야겠다고 했다. 말벌을 볶으면 그 맛이 아주 특별하다고, 입맛을 다셔가며 떠들어댔다.

사실 난 단순히 말벌을 제거하기 위해서 앞집 아저씨한테도움을 청했던 게 아니다. 앞집 마당에는 벌통이 나날이 번성하여 2층까지 올리고 수십 통으로 벌통이 늘어가고 있었다. 앞집의 벌꿀 농사가 번성해 갈수록 이웃들의 피해는 더해가고 있었다. 이른 봄 새로 온 2층집 차가 하얀 색 차라서 문제가 더 커졌다. 하얀 색의 차는 벌똥이 침습하게 되면 본래의 색상이 변색해서 차를 버리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2층집 식구들이 ‘날마다 차 위에 포장을 씌우느라 비지땀을 흘리는 것을 볼 때마다 곤혹스러워지곤 했다. 그렇다고 이웃지간에 뽀루루 찾아가서 벌통을 치우라고 할 수는 없고, 고민 끝에 말벌 집 제거를 부탁하는 것이다. 그러면 앞집 사람들에게 자기네들 벌 농사 때문에 이웃들이 얼마나 피해를 보고 사는지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고, 그러면 벌통을 딴 곳으로 옮겨가려니 하는 기대를 품었던 것이다. 그래서 119에 벌집 제거를 요청하려던 것을 앞집 아저씨께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이었다.

앞집 아저씨를 앞세워 말벌 집 위치를 가리키면서 마당에 세워진 하얀 차에 포장이 처진 이유를 강조하여, 벌 농사 때문에 불편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그러면서 송아지만한 개들이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서 편하게 잠을 잘 수 없다며 다른 이웃을 빗대어 선의의 피해를 은근슬쩍 들추어 보기도 했다. 그런데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벌을 볶아서 막걸리 잔치를 벌이자’라며 즐거워하는 모습들을 보자니, 맥이 탁 풀리고 만다.

2016년 여름은 이래저래 기억에 남을 무더위였다.

박말임 (청주 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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