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2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25)
  • 경남일보
  • 승인 2016.08.1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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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25)

유혼이 옳은 귀신이 되려면 쳇망의 구멍을 다 헤아려야하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가는 길손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외우고 있던 숫자를 잊어버리고 또 헤아리기를 거듭하며 영원히 갇혀 있게 된다는 길가의 무덤들.

하지만 어머니에게서 언니는 이미 갇혀있는 귀신이 아니었다. 어머니를 감고 돌며 집안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때로는 어머니를 실성한 사람처럼 병들게 하는가 하면 쥐구멍 하나를 막아도 동티로 나타났고 집안사람 누구의 일에든 나타나서 간여를 했다. 어머니는 한 번만 언니를 위해서 해원 굿을 하자고 아버지를 졸랐지만 아버지는 언니의 귀신을 인정하지 않았다.

“무당한테 물으면 굿하라하고 판수한테 물으면 경문 하라는 게 뻔 한 이친데 제 발로 가서 귀신을 만들고 있어. 그런데 쓸 돈 있거든 날 주어. 귀신은 내가 잡아 줄낀께”

만약 집안에서 굿소리가 나면 동네 사람들의 이목을 받게 될 것이고 그러면 또 고개를 숙이거나 외면을 하면서 마을의 수군거림이 숙지근해질 때까지 남의 이목에 눌려 지내야하는 것을 아버지는 참을 수 없어 했다.

“만약 집안에서 굿소리가 나왔다간 당장 집구석에 불 싸질러 버리낀께 그리알라꼬!”

아버지의 으름짱은 으름짱으로 그치지 않았다. 집을 그을지 못하면 하다못해 닭장이라도 태우고야 마는 강퍅한 곧은 성미를 아는지라 어머니는 가슴앓이만 할뿐 감히 아버지를 거역하는 어떤 행위도 꾀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아버지를 겁내지 않고 굿은 진행될 것이다. 그것은 목숨을 건 어머니 나름의 비장한 각오를 결행해 보이는 행동이다.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황토흙 무덤이던 언니의 산소는 헛듯 보면 묘지인지 분간도 안 되게 편편한 작은 흙더미로 잦아들어 있었다. 들고 온 꽃다발을 놓고 양지는 고개를 숙였다.

‘쾌남아, 니는 우짜든지 공부만 열심히 해라. 무슨 짓을 하더라도 니 밑은 내가 닦아 낼 끼다. 우리는 절대로 옴마, 저 축구 등신 맹키로 살모 안 된다’

양지는 눈을 감았다. 적막한 산바람을 타고 재글재글 들끓는 산새소리가 잡목 숲에서 실려 왔다. 기억해 보려 해도 마음만 먹으면 선명하게 떠오를 줄 알았던 언니의 얼굴조차 또렷이 되살아나지 않았다. 광기로 번득이던 새파란 눈빛이며 아버지에게 항거하는 거침없는 욕지거리와 앙칼스럽던 모습까지 의식 속에만 둥두렷이 박혀있을 뿐이었다.

얽혀드는 언니에 대한 상념을 쫒기 위해 양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언니를 회억하면 먼저 바늘에 꿰인 실이 딸려 나오듯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아버지의 가혹한 추달이 떠올랐다. 그것을 과연 자식을 훈도하기 위한 사랑의 매질이라 할 수 있을까.

일곱 살 때의, 설이 지난 뒤 얼마 되지 않은 어느 아침이었다.

목젖을 찌르는 매운 연기에 콜록 기침을 하며 쾌남은 잠을 깨었다. 쥐구멍으로 들어 온 연기가 안개처럼 방안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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