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2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28)
  • 경남일보
  • 승인 2016.08.1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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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28)

언니는 일손이 재빨라서 여기저기서 칭찬을 들었다. 하던 일이 조금 남으면 다른 인부는 그만 두고 언니만은 다음날도 불러서 일을 시켰기 때문에 언니는 더러 새벽부터 일장으로 나가곤 했다. 말하고 나니 지금은 묘포장 일이 다 끝난 계절인 것은 알았지만 어떻게든 위기를 면하는데 도움이 되어야겠다 싶은 마음이 앞섰던 것이다.

그러나 금세 밝아질 것으로 여겼던 암암하게 굳어진 엄마의 인상은 더 깊게 찌푸려졌다. 듣고 있던 아버지가 새로운 사실이라도 발견한 듯이 먼저 큰소리를 쳤다.

“또 내 모리기 말만한 가스나로 그게 내보냈더나?”

그 순간 어머니의 표정은 이외로 차분해졌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쾌남이도 어렴풋 짐작을 했다. 아버지는 언니가 돈을 벌기 위해 남의 집 일을 하러 다니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나 언니가 아버지 몰래 벌어 온 돈은 가용 돈이 되었고 아버지의 용돈으로 나가기도 했다. 어떤 날 저녁때는 남의 집 밭을 매러간 언니가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혹시 아버지가 찾으면 어쩌나 싶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아버지는 아무 소리 없이 식사만 하고 밖으로 나갔다. 이제는 아버지도 언니의 노동력을 인정하나 보다 마음 편히 있으면 다음 날에야 어김없이 언니를 불러 족치곤 했다.

그럴 때면 언니는 아버지가 안보는 데서 눈을 흘기며 입을 비죽거렸다.

‘흥, 그런다꼬 안가면 또 뉘 집에 가서 장리 얻을라꼬’

언니는 여간 간이 크지 않았다. 어머니만 있으면 마치 제가 어른인 것처럼 더 거침없이 의사표시를 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안쓰럽고 부끄럽기도 한 그 묘한 표정으로 힘없이 변명을 했다.

“아부지 말씀도 틀린 거는 없다. 여자란 거저 집안에서 살림만 살아야 제가 편한 긴데, 어쩔 수 없이 널 내보내는 에미가 잘못이다”

“그라모 남한테 돈 빌리러 가는 거는 안 부끄럽나? 언제까지 갈끼고? 누가, 언제 갚을 낀데?”

그렇게 따지면 엄마는 대답이 한숨이다. 가장인 아버지 스스로 돈 한 푼을 마련해 본 적이 없다. 얼마 안 되는 언니의 초등학교 월사금을 낼 때도 엄마는 아직 잉아도 못 올린 필 베를 흥정하며 동분서주 채변을 해 날랐다. 길게 내뿜는 엄마의 한숨을 언니도 지겨워했다.

“엄마, 좀 당당하게 내 편 좀 들어 도오. 아부지가 치면치레한다꼬 그라는 거 누가 모르나. 체면이 돈을 주나 양식을 주나. 내가 엊그제도 샘골 댁 배밭에서 거름 넣고 있는 거 아부지가 안본 줄 아나. 모린 척 그냥 지나가시길래 또 뒷풀이 하시겄구나 각오하고 있었다. 우리 형편에 내가 안 나서모 뒷산 여시가 나서서 돈 벌어다 줄끼가?”

“그렇게 말은 그렇다만, 니가 머스마만 겉애도 걱정 없을 낀대…”

“또 그놈으 머슴아타령, 내가 가스나라꼬 몬 하는 기 뭐 있노. 걱정마라. 언제꺼정 아부지 세상인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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