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2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29)
  • 경남일보
  • 승인 2016.08.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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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29)

나도 인제 다 컸다. 엄마는 인제 가만히 집에서 살림이나 살면서 아부지가 좋아하는 아들이나 낳아 조라. 낼 모레는 삼밭골 새마을 사업장에도 나갈 끼다. 밀가리도 주고 돈도 주고 그란 단다. 내사 일거리만 많이 있으모 좋겄다“

언니는 아버지 앞에서만 기를 죽이고 얌전한 처녀인척 하지만 당당하고 야무지기가 그 또래의 얼치기 사내 몇은 대적할 기상을 갖고 있었다.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일감을 찾아 남의 품일을 다녔고 곡식이건 돈이건 받는 대로 내놓아 시름어린 어머니의 얼굴에 잠시나마 기쁨의 빛을 던지곤 하는 장한 맏딸이었다.

하지만 언니는 해종일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같이 들일을 갔었다는 사람도 없었고 어디서 그녀를 보았다는 사람도 없었다. 무언가 어둡고 큰 그림자는 이미 집안 가득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고삐를 끊고 달아난 목매기소처럼 집을 뛰쳐나간 언니의 가출 시작이었다.

”에미라는게 집구석에 쳐 자빠져서 딸자식 단속을 우찌했길래 이 모양이고, 집구석 꼬라지 잘돼 간다“

아버지의 고함 소리는 온 집안의 분위기를 더욱 강도 높은 긴장 속으로 몰아넣었다.

가출을 감행했던 언니가 의기양양한 아버지의 손에 끄달려 와서 엄마 앞에 패대기쳐진 것은 바로 다음날 저녁때였다.

”새앙쥐 겉은 년이, 뛰어야 벼룩이지“

명자언니의 자취방에서 언니를 잡아 온 것을 마치 천리 저쪽에라도 가서 포획해 온 먹잇감처럼 아버지의 기상은 충천했다. 아침부터 다음 날 저녁까지 하루 반 동안 온다 간다 말없이 집을 비웠던 언니의 행동은 아버지를 아주 심각하게 만들었다. 아무개네 딸이 난질을 갔단다, 소문이 나면 아버지는 이제 낯을 들고 다닐 수 없이 부끄러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는 기승했던 수치심이 둔해질 때까지 언니를 매질했다. 나다니지 못하도록 머리카락을 죄 가위질 해버린 것은 물론이다. 쾌남은 언니가 하필 명자언니네로만 가지 않았다면 저렇게 심하게 당하지는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잖아도 명자네와 어울리지 말라고 다짐해 오던 아버지인데 그들이 시내의 방직공장에 취직을 하고 나서는 어머니까지 덩달아서 인종지 말자들이나 다니는 게 방직공장인양 말하는 아버지 편을 들었다.

”너거 아부지 성질 모리나 모래밭에 쎄를 박고 죽어도 여식아들 밥 빌러 보낼 사람 아닌깨“

어디서 듣고 있었는지 또 이런 소리도 했다.

”방직공장 변소간에는 배총도 안 뗀 언내가 빠져 죽어 있더란다. 혼인도 안한 처녀 총각이 한 군데서 뒹군다는데 무슨 일이 안 나것노. 약방에 아아 떼는 약을 사로 줄로 늘어선 기 공장에 댕기는 처녀들이란다. 차라리 식모 살던 처녀는 살림을, 그것도 부잣집 살림을 살아봐서 살림은 야무지게 잘할 끼라꼬 혼처 구하기는 낫다카더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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