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연습
버리는 연습
  • 경남일보
  • 승인 2016.09.1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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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말임 (청주문인협회 회원)
박말임
노인들이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사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종종 보게 된다. 처음엔 그 가족들이 왜 저렇게 방치해 뒀을까, 그 가족들의 무관심을 지목했었다. 그런데 그런 노인들의 행동이 병증이라는 의료상식을 알게 되면서 ‘가족들도 어찌할 수가 없어서 저렇게 되었겠지’하며 그 노인이 살아온 날들을 유추해보게 되고 아울러 미래의 내 모습도 상상하게 된다.

평생 모으는 것에만 치충하여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티끌 모아 태산’ 라는 글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는 걸 보면 잘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는 건 다 모으고 절약해야 된다는 것을 신조로 알고 살았다.

그런데 수 십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그런 검약한 생활태도가 구질구질한 살림살이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악습으로 취급받게 되었다.

장롱 속도 그렇고 집안에 있는 수납장마다 쑤셔 박아놓은 물건들을 보며 ‘저걸 어쩌나’ 한다. 주방의 수납장에는 녹즙기를 비롯하여 믹서기와 주방용품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선뜻 버리지 못한 일회용 용기들도 잔뜩이다. 포장주문해서 사다 먹은 음식통들을 세척해 뒀다가 음식물 쓰레받이로 쓰거나 야외 나갈 때 한번은 더 써먹지 해서 뒀던 것들이다. 특히 많은 건 고추장 쌈장 용기들이다. 이런 걸 좋게 해석하면 검약정신의 발로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욕심이다. 또 이해하려는 마음이면 평생 몸에 배서 자동화된 검약의 실천이지만 폄하 해석하면 늙은이의 소유에 대한 집착증이다.

마음속으로 버릴 것들을 선별하였다. 옷가지나 주방용품들은 내 손으로 해야 할 일이지만 창고에 쌓인 물건들은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다들 직장 생활로 바쁘게 사는지라 주말에 쉴 겸 오는 자식에게 창고 정리를 시킬 수가 없었다. 그런 세월이 쌓이다 보니 창고는 더 복잡해진 것 같다.

노인들이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사는 모습들, 그들도 과거에는 가족들의 관심 속에 사랑받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과 평생 몸에 밴 검약 정신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저장 강박증’이라는 병증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 충족에서 멀어질수록 병리적인 ‘수집 강박증’이 더 심해진다고 하니,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은 스스로 경계할 일이다. 자식들이 구태라고 느낄 만한 물건들은 정리하고 그 빈자리에 가족들의 사랑을 꽉 채우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버리는 연습이고 채움의 미학이 아닐까한다.
 
박말임 (청주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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