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3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30)
  • 경남일보
  • 승인 2016.08.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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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30)

“당골네도 딸아들로 우찌 에울라꼬 그런데다 보냈는고. 양갈보 맹키로 화장을 하고 빼딱구두 신었네 엉덩짝을 흔들고 댕기믄서 말이라꼬 하는 기 욕소리가 태반인데 천하에 망종들이라꼬 동네사람들이 모도 흉을 보는데 내 듣기도 안 좋더라“

쾌남이도 그때는 어머니의 말이 모두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니를 따라 명자언니가 다니는 공장에 가서 본 공장 종업원들의 대부분은 떠도는 소문과는 딴판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쾌남이 보았던 방직공장은 콩이나 옥수수가 많이 심어진 인적이 드문 벌판 가운데 있었다. 일본사람들이 버리고 갔다는 그 건물은 잇댄 판자벽을 검게 칠한 일자형이었는데 인근으로 기차가 지나갈 때면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흔들리며 허연 섬유먼지를 비늘처럼 천장에서 떨어뜨리고는 했다. 요란한 방직기의 진동으로 진저리 치듯 흔들리는 건물의 천정으로는 거미줄 같은 가느다란 실이 기어오르고 기어내리렸는데 그 아슬아슬한 모양을 구경하느라 정신을 팔다보면 눈이 삼삼해지고 목이 뻐근하게 아팠다.

손짓으로 밖에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시끄러운 공장 안에는 어디서 저렇게 많은 처녀들이 모여왔을까 싶게 얼굴이 노랗게 여윈 여공들이 많았다. 이들은 모두 다람쥐처럼 날렵하게 몸을 옮겨다니며 일손을 놀렸다. 어찌나 손놀림이 빠른지 가느다란 실을 칭칭 감아서 떼었다가 웽웽 돌고있는 기계에다 이어 붙여서 돌리는 능숙함이 신기할 정도였다.

남자와 여자들이 한 일장에서 자유롭게 몸을 스치며 일을 하는 것도 참 신기했다. 얌전하게 기계 앞에서 실을 잇고 베틀을 살펴보는 일을 하는 착실한 아가씨가 있는 반면 고장 난 기계가 없나 살피며 집게나 펜치를 들고 어슬렁어슬렁 기계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더벅머리 기사와 눈웃음을 치면서 툭툭 몸을 부딪치는 얄궂은 행동을 하는 아가씨들도 보였다. 우리 아버지가 아시면 벼락이 떨어지겠구나 싶은 동작들도 있었으나 그들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라 다른 남녀들보다 더 다정해야되는 게 정상일 것 같았다.

그 중에도 놀이터 삼아 온 듯이 예쁘장한 신참 여공을 쫓아서 히히힝 말처럼 웃으며 뛰어 다니는 맨발을 벗은 기사들의 신나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이런 사람은 일이 힘들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직장에 다니는 듯 여겨지기도 했다. 잡히지 않으려는 여자들의 비명과 잡으려는 남자들의 재미있어하는 욕지거리에 섞인 기계소리는 그치지 않고 뒤섞여서 무늬 고운 비단이 되는 실을 줄줄이 목관에 감아냈다. 어디론가 차로 실려가서 비단베가 되어서 팔리고 공장에서 여공들은 또 비단을 짜서 돈을 벌고. 그 돈은 집으로 보내져서 가족들의 밥이 되고 옷이 된다. 공장이란 그런 곳이었다. 어린 쾌남이 최초로 본 직장에 대한 감상이었다.

언니도 그런 곳에 다니고 싶어 했다. 땡볕에 그을리며 무거운 짐을 나르지 않아도 좋을 뿐 아니라 보름에 한 번 아니면 한 달에 한 번 자기가 일한 만큼 정해진 월급을 받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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