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
성묘
  • 경남일보
  • 승인 2016.09.13 11: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세핀 김 (LA거주교포)
조세핀 김

지난 주말 LA근처 지인의 추석 성묘를 다녀왔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장지를 가졌다는 그곳엔 드넓은 대지에 잘 가꾼 잔디가 깔려 있었고 드문드문 고인의 비석들이 보였다. 주변에는 우리들 외에도 몇몇 사람들이 성묘를 와서 크게 자란 잔디를 자르기도 하고, 소풍 나온 가족들처럼 집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을 나눠 먹기도 했다. 같이 온 아이들은 묘지 옆을 뛰어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모든 풍경들이 평안하고 고요해 보였으며 참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길어야 30분 정도 잠깐 산소에 들러 성묘를 하는 한국의 풍습과는 달리 하루 종일 묘지 옆에서 망자의 삶을 되새겨보는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그 평온함을 누리며 이런저런 기억들을 나누기도 하고, 그저 가만히 말없이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편안함이 흐르는 그런 시간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이 광경에 호기심이 생겨 자리를 털고 일어나 산책을 하듯 가벼이 걸으며 이곳저곳을 돌아보게 됐다. 비석에는 망자의 사진과 함께 태어난 날과 세상을 등진 날이 새겨져 있었다. 그 중에는 팔십을 넘긴 망자도 있었으나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십대 혹은 삼십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었다. 어떤 묘는 오랫동안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잔디가 무성하게 자라 비석이 잘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꽃다발을 들고 묘를 찾아가는 가족을 둔 망자와 이름도 보이지 않게 묻혀 잊혀 버린 망자들 사이에는 따스함과 차가움이 묘하게 교차됐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서 이 자리에 앉아 뭔가를 느끼며 얻고 실천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망자들은 저 자리에 누워 무념무상, 고요하기만 하다. 세상에 살면서 먹었던 모진 마음, 가시 같은 마음 그 긴장들이 실밥 터지듯 툭툭 터져 나가는 듯했다. 인간으로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끝자락에 와서야만 결국 삶의 끈을 놓을 수밖에 없는 우리네 인생살이가 가련하기도 했다.

나도 언젠가 이런 자리에 와서 묻힐 테고 찾아와주는 사람이 있어 깨끗이 정돈된 묘지가 될지, 아니면 잔디에 덥덮여 보이지도 않는 비석이 될지 궁금해지는 날이었다. 

조세핀 김  (LA거주교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