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3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33)
  • 경남일보
  • 승인 2016.09.1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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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33)

“저 년 어서 시집보내야 되것다”

“아부지는 나 같은 딸자식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음서 뭔 혼기는 그리 중요합니꺼”

“야, 이년아 계집하고 사기그륵은 내돌리모 깨지기 마련인기다. 깨진 그륵 살라는 인간이 세상에 어딧것노”

“나는 그릇이 아니고 사람입니더. 그릇이 제 맘대로 움직이는 거 봤심니꺼”

“또 저 주딩이, 저 년 요새 부쩍 간이 커졌더라. 그랑깨 내가 밖으로 나돌모 안 된다카제. 언년이 지 애비 말에 때꼭때꼭 말대답을 하노, 천하에 부상년 같으니”

성남언니의 입을 향해 아버지의 주먹이 뻗어갔다. 그러나 잽싼 동작으로 언니가 피했기 때문에 입술이 상하지는 않았다.

“지는 절대로 시집 안 갈낍니더, 제 집 강생이도 주인이 귀애해야 남도 쓰다듬어 준다는 디 아부지한테 이런 취급당하는 자식 불 안 켜도 앞날이 훤하지 예”

“하이고, 저런 걸 어디서 뭘 묵고 내질러서”

말이 막힌 아버지는 잘 드는 칼날처럼 하얀 눈길을 어머니께로 돌렸지만 어머니는 삼는 모시올 을 잇대며 못들은 척하고 있을 뿐 아버지 말에 가타부타 토를 달수도 없었다.

“지는 아부지가 어머이한테 하시는 것만 보고 여자는 남자 밑에서 죽으라모 죽고 살라모 살아야되는 무신 기계나 짐승겉은 걸로 짝지아진 줄 알았어예. 하지만도 인제는 내 눈도 옛날보다는 보는 기 많아졌고 생각하는 것도 많이 달라졌어예. 명자네 자취방 주인아저씨만 해도 아부지가 어머이한테 하드키는 안하데예”

언니는 어느 결에 정말 많이 달라져 있었다. 스스로의 표현대로 보는 눈이 열리고 듣는 귀가 터졌는지 전처럼 겁먹은 기색도 없이 아버지의 말을 받아쳤다. 소리치면 달려와서 구해줄 보호군사라도 은밀한 곳에다 매복시켜 놓은 것처럼 그녀의 말씨는 이제 떠듬거리거나 중간에서 옆길로 새는 일 없이 차분하고 조리가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머릿속에서 다음 말을 잇대어 주기라도 하는 듯 전에 없이 당돌하게 아버지 앞에서 고개까지 빳빳하게 들고 있었다.

“아부지, 지는 절대로 시집만큼은 지 맘대로 지 맘에 드는 남자한테 선보고 가지 아부지 어머이 맹키로 어른들이 시킨다꼬 거저 따라하지는 않을낍니더. 아부지 질로 나가게 해주이소. 지맘대로 하다보모 뭐든 다 잘할 것같십니더. 아무 것도 안해준다꼬 아부지 엄마도 원망도 안할 깁니더 가만히 앉아서 지 노력도 없이 넘이 주기만 바래고 편히 사는 기 얼매나 좁고 어리배이 생각인지 인자사 하늘이 보이고 저 울 너머 세상이 보입니더. 아부지, 딸 하나 없는 셈치고 내 좀 내맘대로 하게 내비 두이소. 제발 부탁입니더. 지가 잘되모 꼭 아부지 어매 한테 잘할깁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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