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36)
그런가 하면 어느 날은 유흥에 빠져 피리를 불고 북 장고를 쳤다. 천렵을 즐기고 사냥개를 길러서 산돼지 사냥을 가겠다고 나서기도 하는 트문없이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므로 가족들로 하여금 종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흔들리게도 했다.
‘너가부진들 그라고 싶어서 그라는 기 아이다. 돌에도 나무에도 댈데 없이 외로운 사람인데 맘 붙일데가 없어서 안그라나’
엄마는 굳이 이런 변명으로 아버지를 두둔하며 언니를 설득했지만 언니가 바라보는 관점은 이미 일치하지 않는 다른 곳으로 뻗어가고 있었다.
“야가 와 이라노. 성남아, 니가 와 이라노. 하고 베릴 말이라도 그런 소리 마라. 아부지가 이 집에 어른인데 그게 무인 소리고. 니가 그런 소리 하모 넘들이 욕한다”
살림밑천은 역시 큰딸이라고 동네사람들도 칭찬할 만큼 착하고 일 잘하던 언니가 왜 그렇게 돌변했는지, 훗날, 양지는 명자를 통해 성남언니가 왜 그토록 갑작스럽게 변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듣게 되었다.
언니는 초등학교 총각선생님을 짝사랑했는데 언니가 성가셔진 선생님이 무식한 촌색시를 부모님이 싫어하시니까 자격을 갖출 때까지 만나지 말자고 절교선언을 했던 것이다.
그때는 왜 그렇게 앓아누웠는지 몰랐던 병으로 언니는 먹지도 잠자지도 않고 한 동안 몹시 아팠다. 꽃봉오리처럼 예쁘게 키우던 사랑이 무참하게 일그러진 상처를 언니는 혼자 끙끙 앓으면서 견뎌냈던 것이다. 그러나 언니는 그 수치스러운 충격으로 인해 크나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비로소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사회속에 비친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언니는 자력으로나마 자기 발전을 시도하는 물꼬를 틔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시작이 바로 사회로 먼저 진출해 있던 친구 명자로 통해있었으니 번번이 언니의 뜻은 좌절되고 통제되기 마련이었다.
언젠가 어머니는 양지에게 바람처럼 한숨을 섞어 말했다.
‘나는 너가부지를 알제. 어릴 때부터 변란은 오죽 겪었나. 그 놈의 육이오가 또 조옴 끔찍했나. 그래도 누대 지주로 살았는데 곱다시 그냥 넘어갔것나. 뒤에 어떻게 집은 되돌려 받았다만 조끔썩 남아 있던 토지며 산판을 모두 뺏기고 그 와중에 하늘 겉이 의지하던 늬할아버지가 돌아가싯고-. 너가부지 집단속은 그때부터 더 심해졌다. 살기 좋은 나라 맹근다꼬 오일 육이니 새마을 운동이니 캐서 밀가리 공사도 많았지만 땟거리 걱정을 하는데도 그거 하나 나가서 벌어 오게 했더나. 그란 해도 세상이 더럽게 돌아가는데 남자 여자가 다리통 걷어붙이고 어울리다보모 다리만 나와도 뭣 나왔다꼬 소문나는 세상에 딸자슥 신세 망친다는 기제. 그렇잖애도 곡식에 제비 겉은 양반인데 준비 없이 가장이 되었고, 한 가문을 책임 맡아야 되는 오직 하나 남자 어른 아녔나 우리 집에서. 그러니 집안 단속도 더 심했던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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