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3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39)
  • 경남일보
  • 승인 2016.09.11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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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39)

‘에잇, 요망한 것!’

하는 할아버지의 호령과 함께 무엇인가 방문을 부술 듯이 내던져지는 소리가 났다.

“아부지, 와 그라십니꺼!”

자리끼로 후줄근히 젖은 문을 열고 황급히 들어간 아버지, 허공을 노려보며 꽂은 시선을 돌리지도 않은 채 할아버지는 노기 찬 음성을 던졌다.

“참말로 여식아가?”

할아버지는 며느리가 무엇을 낳았는지 벌써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아셨느냐고 묻고 싶은 아버지에게 할아버지는 다시 지시를 내렸다.

“어서 가서 여식아 오른쪽 팔목에 점이 있는가 봐라”

영문을 알 수 없는 아버지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쌈가르던 아버지의 눈앞에서 입으로 가져가던 고사리 손등에 시곗줄 마냥 선이 둘러져 있는 것을 혹시 피가 묻은 것은 아닌가 조심스럽게 닦아보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두려운 마음으로 점은 아닌 것 같은데 어쩌고 둘러 붙였다.

“허어!”

기막힌 듯 멍해졌던 할아버지의 입에서 다시 거역할 수 없는 엉뚱한 주문이 떨어졌다.

“지금 가서 그걸 없애라. 그게 안 되겠거든 그 점을 도려내라. 병신이 돼도 하는 수 없다. 다른 사람들 아무도 보기 전에, 어서! 그게 바로 요물이란 말이다, 요물!”

참으로 황당한 명이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아버지의 머리 위로 추상같은 할아버지의 재촉은 다시 이어졌다.

“애비 말이 안 들리나. 야 이놈아, 그게-, 죽은 늬누부 손목에 점이 있던 걸 잊었나. 늬누부 그년이, 이 애비한테 못 다 푼 포한을 풀라꼬 도로 태이왔단다”

머리를 싸쥐고 쓰러지는 할아버지의 늙은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우물거리는 아들을 향해 할아버지는 간신히 신음 같은 말을 흘렸다.

“날 위로한다꼬 아무 소리도 하지 마라, 그 요망한 것이 잠시 전에 선몽을 하고 갔다단 말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을 배신하여 혼삿날을 앞두고 외가에 가서 목매달아 죽은 딸의 환영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식을 잃은 상실의 아픔은 뒷전이었다. 은근슬쩍 그런 흉을 숨기고 남의 가문에 불행까지 끼얹었다고 혼사 정했던 집에서 길길이 날뛰는 행패를 죄인인 듯 당해야 했던 참담했던 기억이 그렇잖아도 곤고한 할아버지의 일상을 어망처럼 지배하고 있었다. 삼이웃이 다 아는 망신스러운 일이라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던 할아버지는 죽은 목숨처럼 사람을 피해 살면서 외롭고 고통스러운 만큼 그리워지는 딸, 여자에 대한 애증으로 심장을 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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