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쇼의 묘비명
조세핀 김 (미국 LA 재미교포)
버나드 쇼의 묘비명
조세핀 김 (미국 LA 재미교포)
  • 경남일보
  • 승인 2016.09.27 1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세핀 김

아일랜드 태생의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는 94세까지 장수했다. 1923년에 쓴 ‘성녀 존’이 그를 명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작품에서 잔다르크를 근대적 내셔널리즘의 무의식적인 사상이나 관념 등 정신적인 것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하거나 실현하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1925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인류가 추구해야 하는 차원 높은 도덕성과 인간에 대한 예의가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한다”며 수상을 거부한 적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시 아내를 잃고 크게 낙담한 뒤 1950년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런 말도 했다. “인생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면 단 한 줄도 쓸 수 없다”고도 했다. 말빚이 됐을까. 그의 묘비명(墓碑銘)에 등장하는 말,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우리에겐 위트와 풍자를 가미한 말로 소개되면서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하고 있는 명언이다. 얼핏 보면 자학적이기도 하고 셀프디스(self dis)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뒤에 붙어야할 말 ‘살아 있는 니들도 우물쭈물하다가는 이 꼴이 된다’, ‘그래서 제대로 살아라’이다.

우레처럼 엄혹한 죽음 앞에서도 이런 위트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 어떤 심사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 명언이 영어의 오역, 즉 누군가가 우리식의 구어체로 번역하면서 원문과 달라진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묘비명의 정확한 뜻은 ‘내가 비록 (장수하면서) 충분히 오래 어슬렁거렸다 하더라도 이 같은 일(죽음)이 일어날 줄 나는 알았다”이다. 백수를 앞둔 사람으로서 내가 이 세상을 얼쩡거리며 오래 살았다고는 하지만 결국엔 이와 같은 죽음이 닥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이 정확한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이 말은 건조하고 영혼 없어 보이는 건 혼자만의 생각일까. 100년을 살아도 모든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묘비명의 의미가 여럿 있을 것인데 ‘산자에게 교훈이 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역이라 할지라도 그는 우리에게 “잘 살아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 그의 말대로 우물쭈물하지 말고 마음을 다잡아 살 일이다.

조세핀 김 (미국 LA 재미교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