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4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40)
  • 경남일보
  • 승인 2016.09.11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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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40)

그렇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다. 언니가 굳이 고추를 달고 나지 않아서만은 아닌 복잡한 눈빛들이 언니의 성정을 그렇게 저항적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언니가 조금만 괴이쩍은 짓을 해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고모의 그림자는 작용을 했고 사람들의 그런 경계는 보이지 않는 막이 되어 언니를 감싸기는커녕 장애로 작용 했을 것이다. 딸 많은 집의 맏딸답게 양순하고 억척이었던 언니였지만 굴절된 음험한 시선으로 지배된 영혼의 휘둘림을 전들 어찌 마음대로 감잡을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이제 모든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간다. 언니도 죽은 지 이미 삼십 년이 다 됐고 그 이야기를 전해 준 어머니도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언니며 고모, 언양할머니, 또는 다른 많은 여인들도 가지고 있었음직한 은원을 씻어 버리기 위해 집에서는 지금 어머니가 정성 들여 굿마당을 마련하고 있다.

언니는 미치지 않았어. 양지는 저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있는 이 말을 실토하므로 죄의식으로 멍든 어머니의 병증이 얼마나 더 무거워질지를 생각해 본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언니가 광증(狂症)에 걸렸다고 진짜로 믿고 있었다. 하지만 언니는 눈알을 요리조리 장난스럽게 굴리며 양지에게만 살짝 속살거리곤 했다.

“니도 내가 참말로 미친 줄 알재? 아이다. 그냥 미친 척 하는 기다. 아부지가 펄펄 뛰고, 엄마가 찔찔 울고 댕기고. 연극하는 것처럼 참 재미있다”

어머니는 그런 줄도 모르고 미친병에 좋다는 약을 구해 오고 수소문해서 비방을 알아오기도 했다. 그때 보이던 언니의 행동들은 누가 보아도 미친 사람 아니라고 눈치 챌 수 없을만큼 감쪽 같은 기행들로 연출되고 있었다. 언니는 정말 아버지를 골탕 먹이는 재미로 그렇게 엉뚱하고 극렬한 행동을 하다 저마저 제어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정말 미쳐버린 지도 몰랐다. 해서 아버지와 어머니마저 미치게 만들어 고모의 혼령이 만든 복수의 제단에다 가문의 몰락을 바치게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었을까.

무엇 때문에 아버지와 딸이 저렇게 악귀처럼 서로를 괴롭혀야 하는가. 아버지는 왜 저하는 대로 언니를 가만 두지 않고 그저 집안에만 가두어 두려고 하는지, 언니는 또 무엇 때문에 저렇게 맞고 꾸지람을 들어가면서 꼭 바깥세상으로 나가 ‘공장뜨기’가 되겠다고 나대는 것인지. 영문 모르는 어린 쾌남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집안의 혼란 때문에 고개를 박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녀, 어린 쾌남의 하늘은 항상 낮고 검게 흐렸고 주변은 온통 살얼음이었다. 그녀는 말없이 길을 걸었고 남을 피해 혼자 있기를 원했다. 시린 몸뚱이를 싣고 달려가고 싶은 쾌남의 양지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세상이 이렇게 살기 어려운 곳이라면 더 살아서 무엇을 하겠는가. 그녀의 유년은 나날이 그렇게 차고 굳게 여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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