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4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41)
  • 경남일보
  • 승인 2016.09.11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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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41)

불빛이 미치지 않는 집모퉁이의 기둥에 기대서서 양지는 아까부터 굿마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복을 갈아입고 제상 앞에서 손을 비비며 축도하는 비감 어린 표정의 어머니와 성남언니의 해원 굿이라는 저의만 뺀다면 떡을 나누어 먹으며 웃고 소곤거리는 이웃 사람들이나 북 장단에 맞추어 원색의 쾌자자락을 펄럭거리며 덩싱덩실 춤을 추고 재담을 늘어놓는 무녀들의 모습은 한바탕 놀이마당을 연상하도록 사뭇 유희적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도 제상에다 절을 하고 있었다. 의외로 그의 몸놀림은 다른 때의 아버지가 아니다. 전에 없이 겸손하며 동작이 진지하다.

아버지가 언제, 특히 어머니의 부탁으로 하는 일에 저토록 협조적일 때가 있었던가. 어머니의 일이란 것이 결국은 남편과 자식들을 위한 집안일들이었건만 그저 자신의 체면치레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연연하여 이유부터 따지며 까다롭고 성가시겠다 싶으면 마누라께로 미루기 십상이었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던 아버지 아니던가. 절절한 무슨 뜻인가를 눈빛에 담고 어머니와 간간이 귓속말을 주고받는 아버지의 전에 없던 모습이 여간 경이롭게 보이지를 않는다.

양지는 자신이 모르고 있던 그들 부부의 세계에 대한 묘한 생경함을 느끼고 있다. ‘부부란 쉰밥을 나누어 먹는 사이’란 누군가의 말이 문득 떠오르게 하는 장면이다. 아버지와 나란히 서서 사쁜사쁜 지성으로 절을 하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과 저렇게 잘 어울리는 그림이 될 줄을 예전에는 어찌 단 한 번도 상상해 본적이 없었을까. 그러나 애통스럽게도 지금은 너무 늦었다. 아주 잘 어울리는 화면을 포착해 냈다는 것마저 애달픈 심정이 되어 양지는 외면을 했다.

양지는 슬그머니 굿판을 빠져 나왔다.

무속신앙을 연구하는 학자도 나오는 시대에 귀신이 있다 없다 단정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있다고 지극정성으로 믿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길흉화복을 주재하는 귀신이 있고 귀신 따위가 어디 있느냐고 따지는 사람에게는 없을 수도 있다.

양지는 이미 마음속에서 귀신이라는 개념을 지워 버린 지 오래였다. 사람은 고통스럽고 불가항력적일 때 돌이 건 나무 건 또는 천지신명이라는 자기 이상의 절대 능력자를 간절한 마음으로 상정해 놓고 매달리며 구원을 요청한다. 신이 있다고 믿을 만큼 영험스러운 일을 아직 경험해 본적이 없으며 신을 믿고 기도할 시간에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몸으로 뛰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라 믿어온 양지이기에, 더구나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어머니의 병굿은 아무래도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소득이 있다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래도 부부로서 그들만이 통할 수 있는 남모르는 통로를 갖고 있었다는 확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차라리 목격하지 말았으면 싶은 낯선 광경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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