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4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43)
  • 경남일보
  • 승인 2016.09.11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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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43)

“좀 일찍 만났더라면 나도 볼 수 있었을 긴데, 서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지금 몇 살이나 될지 몰라?”

“저하고 열 살 가량 차이가 났으니까, 아마… 마흔 넷? 다섯?”

“동생을 그렇게 귀애했다고 외숙모님이 그러시더만”

“네, 사랑을 많이 받았죠. 키도 크고 얼굴도 미인이고 무엇보다 마음씨가 그만이었죠. 언니를 놓친 건 아버지 인생에도 커다란 손실이예요. 언니만 잘 거두었어도 구차하게 노후 걱정은 안 해도 됐을 건데……”

“내놓고 말씀은 안하셔도 외숙님도 적잖이 후회스러우신 모양이더만. 숙모님 말씀 들으니까 무슨 병으로 그랬다던가 하시던데…?”

“병요? 그렇죠. 모두들 그렇게 알고 있었고 병은 병이었죠. 늦잠을 못 깬 봉건 가장의 폭압에 저항했던 병? 지금 생각하면 언니는 무척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애요.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발로 끝나기는 했지만-, 불발로 끝난 쿠데타?, 개혁? 좀 우습죠 제 표현이? 그 때의 우리 집 형편에는 아주 필요한 그런 소용돌이가 감돌고 있었으니까요. 돌이켜 보면 육 십 년 대 후반이니까 그리 옛날도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우리 아버지의 의식은 조선시대에 얽매여 있었거든요. 결국 변화를 수용할 능력이 없는 어리석고 용기 없는 지도자의 가정이 맞닥뜨려야할 당연한 결과였고요”

무슨 말인가를 하려던 오빠가 김빠진 듯 한 음색으로 결론을 지었다.

“그래, 어느 때나 항상 이유 없는 사건은 없지…”

순간 양지는 어머니에게 들은 고종오빠의 출생에 대한 내력을 상기했다. 오빠는 그 어둡고 깊은 미망의 소년시절을 어떤 심정으로 견뎌냈을까.

청 높게 읊조리는 무녀의 회심곡 소리에 이끌린 듯 이윽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가 생각난 듯이 오빠가 말했다.



“외숙모님이 저쪽에다 넘겨주라면서 외숙님의 일상용품을 몽땅 챙겨 보낸 것 동생도 아는지 몰라? 받아놓기는 했지만 느낌이 어쩐지 좀 깨자분하다”

그쪽에서 늙은 아버지를 내치지 못하게 언양에서 갖고 온 돈 전부를 전한 것도 알고 있었지만 부질없다는 생각이 왈칵 끼쳐 세세한 말은 제한을 했다.

“여기, 다시는 보내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계시는데 그렇게 될까?”

“거기서 살림 차리고 다시 아들 낳으면 되잖아요?”

“아들을 또?”

오빠의 반문에 양지는 잠시 숨이 막혔다. 어머니에게서 들은 말과는 전혀 다른 뜻의 전달이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잘못 알고 있는 게 된다. 어머니는 또 한 번 절망했을 아버지를 안쓰러워하며 속을 모두 뽑아주어도 성에 안찰만큼의 연민에 빠져 있다. 성격상 망신스럽게 현장 확인을 할 사람도 아닌 어머니 한 사람의 눈과 귀를 봉쇄하는 일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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