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플러스 <154>거창 호음산
명산플러스 <154>거창 호음산
  • 최창민
  • 승인 2016.10.0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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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산세에 올라탄 호랑이 정상석이 낯설다
▲ 숲이 들어차 정비가 필요한 호음산 등산로.


호음산(虎陰山·930m) 이름은 한자 ‘그늘 음’을 써 산의 형세가 호랑이를 닮았다는 것을 표현했다. ‘소리음’을 쓰기도 하는데 호랑이 울음소리가 많이 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산기슭 큰골에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호음동(虎音洞)이란 지명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백두대간 덕유산·지리산과 연결된 기맥으로 호랑이가 특히 많이 살았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또 재미있는 것은 마을 앞에 ‘개밥말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반도의 제왕 호랑이에게 쫓긴 개가 겁에 질려 옴짝 달싹 못하고 웅크리고 있는 형국이라는 이름이다. 이를테면 호음산은 호랑이 산이라고 할수 있다.

지리적 위치는 백두대간이 민주지산 대덕산 삼봉산 덕유산을 지나 신풍령(빼재)에 내려서기 전 갈미봉에서 남으로 분기해 칡목재 시루봉을 거쳐 뻗어 내린 능선이 호음산줄기이다. 30km에 이르는 기맥은 위천천으로 잠영해 수승대를 형성한다. 이곳 거북바위(명승 제53호)가 유명하다.

▲등산로: 거창군 위천면 수승대→황산마을 고택→들길→황산저수지→첫 번째, 두 번째 계곡 건넘→벌목 공사 중(길 헷갈림 주의)→갈림길 직진→호음산 정상(하산)→북상면 갈계마을.



▲오전 9시 40분, 거창군 위천면 수승대 매표소를 지나면 거북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수승대의 명물 거북바위가 나온다.

바위 위에 세월의 아픔을 견뎌낸 소나무들이 곳곳에 자라고 있어 마치 작은 정원같은 느낌을 준다.

삼국시대 말기 즉, 뜨는 신라 지는 백제 시절, 이곳은 ‘근심을 보낸다’는 뜻의 수송대였다.

쇠락해진 백제의 사신들은 신라조정에 불려가서도 갖은 수모를 당했다. 신라 조정의 심기를 건드리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신라의 콜 싸인이 나면 사신들은 몸을 떨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마지막 길이 될지도 모르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백제인들은 그들을 떠나보내며 술 한 잔으로 위로했다. 그래서 한자 ‘보낼송’을 써 수송대이다. 수승대로 바뀐 것은 1000년 뒤의 일이다.

 
▲ 퇴계 이황이 수승대로 명명했다고 기록한 각자.


조선시대 요수 신권은 원학동 수송대 구연재를 짓고 초야에 묻힌 채 후학을 가르쳤다. 시대의 석학 퇴계 이황이 이곳에 들른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퇴계를 영접하기위해 기다렸다. 그러나 퇴계는 도중에 왕의 부름을 받고 되돌아갔다. 대신 방문하지 못한 아쉬운 마음을 담은 서찰을 보냈는데 거기에 ‘찾아다녔던 뛰어난 곳’이라는 의미를 담은 수승대 제안이 등장한다.

거북바위 암반에는 여러 문인들이 글을 새겨 놓았다. 자고암이라는 암자를 비롯하여 신권의 호인 요수를 따서 지은 풍경 좋은 거창의 대표적인 정자 요수정과 관수루 등이 남아있다.

오전 10시 10분, 수승대 매표소를 빠져나와 지방도를 건너면 바로 황산마을로 가는 길이다.

교량을 새로 놓고 길을 내는 황산마을고택 진입로정비공사가 한창이다. 마을 앞 수백년 된 느티나무가 오래전 형성된 마을임을 알려준다. 수령 600년을 넘긴 이 고목은 안정좌(案亭坐)나무라고 부른다.

황산마을은 샛강 호음천을 중심으로 양쪽에 120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산다. 거창신씨 집성촌으로 마을의 80% 정도가 신씨다. ‘신씨고가’는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집으로 명성이 높다.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뒤편 들길을 따라 산으로 간다. 이 지점에서 보이는 황산저수지를 기준점으로 해서 올라가면 된다.

수확철 먹을 것이 풍부해진 들녁에 산짐승 날짐승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새끼 고라니 한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도망을 가다가 머리를 휙 돌아보더니 이내 달음박질쳤고 콩밭에 날아든 까투리 한 무리는 코앞에서 ‘푸드득’ 하늘로 치솟았다.

 
▲ 사랑의 열매를 닮은 열매
 
▲ 방언으로 너불떼기라고 부르는 유혈목이의 위장술


천적 너구리나 살쾡이를 피해 아카시아 나뭇가지에 달라붙어 있는 것은 방언으로 너불떼기라고 부르는 꽃뱀(유혈목이)이었다. 한참을 바라보고 나서야 뱀 인줄을 알았으니 위장의 귀재인 쏙독새 못지않은 절묘한 위장술을 자랑한 셈이다.

등산로는 저수지 왼쪽 라인을 따라 나 있다. 저수지 제방 옆에 있는 비석의 주인공은 1999년 세상을 뜬 구암(龜岩) 신도성이다. 정치인으로 국회의원 장관 관선 경남지사를 지냈다.

곧이어 넓은 임도가 시작되고 본격적인 숲으로 들어간다. 임도는 넓지만 워낙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서인지 양옆 숲이 우거져 밀림 속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저수지의 원수가 되는 물길을 좌우로 가로지르면서 호음산까지 고도를 높인다.

오전 11시, 물길을 건너고 작은 폭포를 지나친다. 개울에는 물위에 뜨는 소금쟁이 물매음 물땡땡도 보였다.

 
▲ 수승대 거북바위


뱀 꿩을 비롯해 요즘 보기가 드문 수서곤충들이 많은 것은 사람들의 통행이 적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실제 사람이 많은 우리나라 국립공원지역 등산로에는 이런 동물이나 곤충들을 쉽게 볼 수 없다. 사람의 흔적은 산중턱에 있었다. 무슨 공사인지는 모르겠으나 포클레인이 산에 올라와 나무를 베어내고 길을 내고 있었다. 나무가 잘리고 땅이 파였는데 이 때문에 등산로까지 놓치고 말았다.

하는 수없이 지도를 참고한 뒤 공사가 진행 중인 정면 길을 버리고 왼쪽 등산로를 택해 올랐다. 하지만 이 등산로가 가관이었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길이 사라져 버렸다. 나무가시 산죽을 헤치고 가다가 비상탈출로인 능선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지도상 등산로는 표시돼 있으나 실제 길은 없다고 보면 된다. 조금 불편해도 벌목 중인 길을 따르지 않았던 것이 후회였다.

40여분을 헤맨 뒤에야 북상면 갈계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 역시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태여서 성가신 산행을 해야 했다.

 
▲ 요즘 보기 드문 수서곤충 물매암


낮 12시 40분, 정상. 산불감시초소 옆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호랑이 화강암 석상이 생뚱맞았다. 거창군에서 최근 세운 것으로 보이는데 등산로 정비와 이정표설치가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호랑이 석상만 덜렁 세운 것이었다. 이정표설치와 등산로 정비가 필요해 보였다. 또 하나, 산 아래 산 곳곳이 파여 흉물처럼 보였다. 석산개발로 인한 것인데 8∼9개의 산이 폭격이라도 맞은 듯 회색구멍이 하늘을 향해 숭숭 뚫려 있었다.
 
▲ 호음산 정상석
▲ 석산개발로 구멍이 난 산야.


동쪽 끝에 덕유산이 보였다. 남덕유산에서 삿갓봉 무룡산 향적봉이 울처럼 조망됐다. 위천천 너머에는 월봉산 금원산, 현성산, 기백산이 조망된다.

정상에서 등산로는 삼거리이다. 왼쪽 길은 시루(960m)봉→윗 칡목재→백두대간 신풍령방향이고 오른쪽은 모동산을 거쳐 모전마을로 간다. 주로 종주코스로 이용되는데 칡목재까지 6.2km, 모전 혹은 황산마을까지는 5.5km 남짓이다.

오후 1시 50분, 정상을 떠나 북상면 갈계방향 하산 길을 잡았다.

이곳 역시 등산로는 있지만 길은 정비되지 않아 온통 숲으로 둘러 싸여 있다. 자칫 잘못하면 다른 곳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독도에 주의해야한다.

 
▲ 두 얼굴을 가진 각시투구꽃


하산 길 유독식물 각시투구꽃이 지천이었다. 투구처럼 생긴 모자를 쓴 병사처럼 보여서 그렇게 부르는데 뿌리는 초오(草烏)의 일종으로 독약성분이 강해 화살촉에 묻혀 살상용으로 쓰기도 했다.

반면 한방에서는 처방전을 받아 두통 복통 종기 등 치료약으로도 썼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극약이지만 적당량을 쓰면 특효약이 되는 두 얼굴을 가진 식물이다. 북한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오후 3시 10분 북상면 갈계마을에 닿았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정상에서 바라본 황산마을과 수승대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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