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4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47)
  • 경남일보
  • 승인 2016.10.0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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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47)

양지는 언니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좋은 옷도 사주고 싶고 갖가지 보석으로 장식된 예쁜 장신구도 마련 해주고 싶었다. 생각에 젖어들면 아늑하게 느껴지는 그리운 사랑의 보금자리를 꾸미는 일은 양지 자신이 꿈으로 간직하고 있던 과업이기도 했다.

언니는 그 창창한 젊음의 욕망을 펴보지도 못하고 말았다.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그 많은 미완의 대상을 두고 하필 사탕이라니.

양지는 도리 없어진 애달픔을 꾹꾹 누르며 어둠 속으로 뚫린 길을 밟았다.

바람결이 몰려 올 때마다 우 몰려온 흙먼지가 볼을 따갑게 때린다. 어둠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렇게 어둡고 추운 날 둘이 마을이라도 다녀올 때면 언니는 치마폭으로 양지를 꼭 싸안고 뛰듯이 걸었다. 올빼미 소리가 구슬프면 언니 무서워, 어린 병아리처럼 언니의 품으로 얼굴을 묻으며 어리광 섞인 엄살을 부렸다. 그러나 언니는 이제 지금 이 자리에서 동생이 괴한의 습격을 받는다 해도 어떤 보호도 해줄 수 없는 머나먼 존재가 되었을 뿐이다. 애달프고 안타까운 심정이 된 양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자 소리를 질렀다.

‘아, 아부지 와 그랬십니꺼. 그만 싹뚝싹뚝 고삐 잘라서 자유스럽게 살도록 해주지. 물고기도 어릴 때 떠났던 모천으로 돌아오는데, 물꼬를 틔우듯이 논밭에 거름을 주듯이. 자식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녕 와 그리 몰랐습니꺼’



양지가 초등학교 일 학년이 되었던 어느 날 해질 무렵의 일이었다.

쏜살같이 밖에서 들어 온 아버지가 그년 어디 갔느냐고 언니를 찾더니 앞에 서 있는 쾌남의 머리핀과 옷을 와닥와닥 찢어 벗기기 시작했다. 놀라며 왜 그러느냐고 묻는 어머니의 말에는 대답도 없이 잘 벗겨지지 않는 소매부리는 이빨로 물어 찢기도 하여 양지는 순식간에 넝마를 걸친 거지꼴이 되어 버렸다. 뒤이어 작은방으로 달려 간 아버지는 노래책을 펴놓고 노래를 부르고 있던 언니의 머리끄덩이를 질질 끌고 대밭 언덕에 있는 방공호 속으로 들어갔다.

침을 바른 손에다 막대기를 하나 챙겨 든 아버지는 토굴 바닥에 쌓여 있던 멍석으로 출구를 막아 놓고 언니를 때리기 시작했다. 피부에 마찰되는 막대기 소리와 언니의 비명 소리가 막혀 있는 토굴의 출구를 비집고 음산하게 흘러 나왔다. 쾌남은 엄마의 목에 매달려 울부짖었다.

“옴마, 아부지가 와 또 저라노. 셍이는 인자 집도 안 나가고 일도 잘한다 아이가. 옴마야 아부지가 셍이 직이것다. 퍼뜩 가서 쫌 말기라, 얼렁! 퍼뜩!”

찢어져서 너덜거리는 쾌남의 옷을 갈아입히다 방공호 앞까지 뛰어갔으나 안절부절 못하고 서성거리다 다시 돌아온 어머니는 밤거미처럼 허튼 손길로 갈아 입히다만 쾌남의 옷을 만지다 다시 뒤꼍의 방공호 앞으로 뛰어가기를 거듭하며 갈팡질팡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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