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고속도로 아래 있는 아파트
최만진(경상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객원칼럼] 고속도로 아래 있는 아파트
최만진(경상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 경남일보
  • 승인 2016.10.1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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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자동차, 기차 등의 발달은 도시와 건축에 대한 기존 개념을 혁명적으로 바꿔 놓았다. 이러한 교통수단은 쾌적한 도시 근교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어 도심에서 오밀조밀하게 살지 않아도 됐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등의 발명은 장애 없는 수직이동으로 잠실 롯데와 같은 초고층 마천루 건물을 등장시켰다. 이탈리아 건축가 산텔리아는 1914년에 미래주의 건축선언을 통해 이러한 기계화된 현대도시를 주창했다. 여기에서 그는 수평 및 수직방향의 교통이동을 강조한 입체적이며 3차원 형태의 도시와 건물을 선보였다.

이러한 생각은 대표적 근대 건축가인 ‘르 꼬르뷔제’의 도시과밀화, 공해 및 위생문제 해결을 위한 프랑스 파리의 ‘300만을 위한 현대도시 계획안’에서 잘 볼 수 있다. 도시는 십자형태의 고속화도로가 주축을 이루고 있고, 그 중심 교차점에는 비행기, 자동차, 기차, 지하철 등을 위한 입체적 교통광장을 설치했다. 또한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계획안’에서는 해안을 따라 거대한 선형의 고속도로를 설치하고 그 아래에다 엘리베이터로 접근이 가능한 아파트를 설치하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던 이 사상의 폐해는 머지않아 드러나기 시작했다. 교통체증 및 소음, 공해, 원자재 고갈 그리고 환경문제 등의 새로운 난제를 대두시켰기 때문이다. 이에 1970년대에 들어서는 도시를 친인간적이며 사람중심의 공간으로 만드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대표적으로 보행자 전용거리, 상업시설 내의 보행자 도로인 지붕 유리 아케이드, 광장 및 공원 등의 조성이 활기를 띠었다. 이에 있어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의 차 없는 거리 조성은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기차역 앞에 있는 중앙가로를 보행자 공간으로 만들고 차량 및 대중교통을 지하화하는 충격적인 안이 제시된 것이다. 상인들은 처음에 매상 감소 등을 이유로 극렬한 반대했다. 하지만 시행 후에 사람냄새에 소외된 현대인들이 몰려들게 됐다. 이로써 도심은 다시 활기를 찾았고 매상도 급증했다.

서구화의 전철을 밟아온 진주에도 아직 근대산업화의 도시문제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구한말 객사 앞의 중앙도로는 전통장이 열렸던 곳으로 정감이 가득한 삶의 터전이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자동차가 도심공간을 서서히 잠식하기 시작했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로터리를 중심으로 한 기계 교통수단 중심의 도로체계가 완성돼 자동차가 도시공간의 주인이 됐다. 현재 일부 차 없는 도로가 있기는 하나, 중앙로에는 사람들이 여전히 좁은 보도 위나 지하상가로 내몰려 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원도심에는 사람의 발길이 뜸해졌고 상권도 고사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원도심 재생사업이 진행 중에 있지만 그 실효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생기고 있다. 이에 뒷길이나 갓길이 아닌 중앙로를 비롯한 주요한 원도심 공간을 아예 사람중심의 보행자 전용공간으로 만들자는 제안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이는 도심이 사람 사는 곳이라는 원래의 기능과 역할을 회복시키며, 원도심의 경제활성화의 신호탄이 되는 계기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최만진(경상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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