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밀레니얼세대의 가치관
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경일시론] 밀레니얼세대의 가치관
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 경남일보
  • 승인 2016.10.1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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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리메이크돼 상영중에 있는 신작 ‘벤허’는 웅장한 스케일로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1959년 판 ‘벤허’와는 많이 다르다. 영화의 원작이 된 루이스 윌리스의 ‘그리스도의 이야기’와도 사뭇 다르긴 마찬가지이다. 찰톤 헤스톤 주연의 벤허는 식민지 유대와 점령군 로마,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지배국 귀족과 피지배국 귀족간의 대립, 선과 악의 갈등속에 벌이는 복수극은 강한 자를 악으로, 약한 자를 선으로 설정, 악이 선에 굴복하고 만다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근간으로 스토리를 엮어가고 있다.

그러나 신작 ‘벤허’는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는 과정은 그대로이면서 어느 한쪽의 멸망보다는 용서와 이해로 공존하고 동반하는 쪽을 택했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교훈은 응징이 아니라 이해와 용서라는 뜻이다. 극중에서 벤허와 그를 멸문으로 몰아간 숙적 메살라는 목숨을 건 전차경기를 벌이지만 경기가 끝난 후에는 경기장을 나란히 걸어나온다. 영화의 끝은 화해와 용서로 나란히 말을 달리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종전의 두 숙적간의 결말은 메살라가 경기에 진 후 병으로 죽는다는 설정이다.

많은 영화평론가들은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을 이 영화가 메시지로 전달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우선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감독이 공산세계와 민주주의를 경험한 밀레니얼 세대이다. 그는 공산주의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경험했고, 자유로운 무한경쟁의 민주주의를 경험했지만 어느 것이든 절대 선이 아니라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로 인한 계층간의 갈등, 지도층의 부패, 보수와 진보, 기독교와 비기독교, 백색과 유색의 갈등은 기존의 가치관이 만들어온 자유민주주의의 산물이라는 시각이다. 한마디로 기성세대의 가치관이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벤허와 메살라가 나란히 같은 곳을 향하는 장면이 이를 암시하고 있다. 영화는 인류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회구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은 우리의 지난 총선에서도 나타났다. 사사건건 떼를 쓰고 반대만 일삼으며 정치에 실망을 안겨준 야당에게는 한 번 더 기회를 줄테니 잘 해보라고 격려해준 대신 여당에게는 양보하며 싸우지 말라고 채찍질한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도 제3지대를 설정, 극한대립을 피해 조정하고 타협하라는 메시지가 선거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본다면 그것이 밀레니얼 세대의 국내정치에 대한 메시지일 것이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정치는 총선의 메시지를 무시한 채 또다시 깊은 정쟁에 빠져들고 있다. 폭로전과 타협 없는 평행선, 양보와 타협은 곧 주도권에 밀린다는 시각, 보수가 아니면 진보라는 극한논리, 민생을 내세우면서도 도무지 민생과는 거리가 먼 헤게모니 싸움이 그것이다. 단언컨대 이러한 정치행태로는 어느 집단이든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대선에서의 승리도 장담할 수 없다.

국민들은 보수와 진보에 별 관심이 없다. 흑백논리에 진저리를 친다.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건강하고 평안한 삶을 누리는 것을 원한다. 정치놀음은 그들만의 잔치일 뿐 민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의 정치가 보여준 행태로 신뢰가 없다. 실사구시와는 거리가 멀다. 어린아이들마저 경멸하는 것이 우리정치의 슬픈 자화상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마저 거부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을 주목하지 않으면 우리의 정치는 실패작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벤허와 메살라가 목숨을 건 격한 경주를 마친 후에 나란해 걸어나오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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