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보약
박상재(진주 봉곡초등학교장)
이름 모를 보약
박상재(진주 봉곡초등학교장)
  • 경남일보
  • 승인 2016.10.0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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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재

1978년 7월 1일 군대를 갓 제대한 까까머리 내가 울주군에 있는 동해초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다. 함석지붕의 푸른 바닷가 언덕에 자리 잡은 6학급의 조그만 학교였다. 교문 앞 자갈길 바로 아래가 바다였고, 군인들 철조망 초소가 살벌하게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숙직을 교사도 하던 시절인데, 학교 숙직실이 인가와 좀 떨어져 있어 화장실 가기가 정말 무서웠다. 불빛이라곤 해안가 군인들 초소와 학교 숙직실 백열등 하나가 전부이니…. 정말 ‘전설의 고향’ 같았다.

어느 겨울 밤, 몹시 비바람이 부는 저녁 소변이 너무나 참기 어려워 고민하는 나에게 숙직실 텔레비전 밑에 쭈그러진 주전자가 보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옳지 저기에 소변을 보고 뒷날 아침에 치우면 되겠지’하고 소변을 보았는데, 그만 주전자 씻어 놓는 걸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곤 이틀이 지났는데 자취방이 너무 추워 라면을 끓여 먹고 교무실 조개탄 난로 옆에 등을 데우는데 교감선생님의 표정이 너무 안 좋았다.

“교감선생님, 무슨 일이 있습니꺼?” 내 질문에 교감선생님은 담배를 피시며 “엊저녁에 술을 한 잔하고 숙직을 하다 물을 찾던 차에 마침 텔레비전 밑에 주전자가 있어 흔들어보니 물이 있어 한 모금 마시고는 새벽녘에 정신이 좀 들어 마저 남은 물을 마셨는데, 너무나 맛이 이상하고 짜서 백열등 불빛으로 보니 푸른 곰팡이가 서려 있어 토했다”고 하셨다.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했다. 바로 ‘내가 실례해 놓은 것’이다. 곧 정신을 수습하고 “교감선생님, 일본에서는 소변요법도 있다고 하는데 보약 잡수신 요량 하이소”하니 교감선생님 왈 “더러봐요~더러봐요. 예배당 종칠 때까지 더러봐요”하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담배를 또 뽑아 무신다. 황 교감선생님은 기인이라 지금도 얼굴이 생생하다. 언제나 양복을 입고 주무셔서 양복이 꼬깃꼬깃하고 양복 조끼주머니마다 다른 담배를 넣어 다니며 고스 톱 치다가도 패가 잘 안 풀리면 다른 담배를 종류별로 태우던 모습이 선하다.

옛 추억이 그리워 다시 찾은 학교는 아스라한 내 추억 속에만 있고 낯선 펜션만이 나를 반기니 문득 야은 길재가 떠오른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의 몸짓을 바라보며 ‘잃어버린 청춘의 향기’를 애타게 찾아본다.

 

박상재(진주 봉곡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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