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5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50)
  • 경남일보
  • 승인 2016.10.03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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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50)

어둠이 내리자 아버지는 뒤꼍의 텃밭에다 깊은 구덩이를 파고 언니가 도둑질한 물건들을 모두 묻어 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오늘 집에서 있었던 일이 하나라도 밖으로 새 나가면 모두들 다 알아서 하라고 칼날 같은 무서운 눈길로 식구들을 한 줄에 죽 그은 다음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옷을 탁탁 털더니 태연히 뒷짐을 지고 헛기침을 하며 골목으로 걸어 나갔다.

그 몇 번의 은폐와 닦달로 언니의 행동이 정상으로 돌아갔으면 오죽 좋았을까. 더 버리기 전에 제 임자 찾아서 시집을 보내 버린다고 매파를 놓았으나 웬일인지 일찍부터 들던 중매도 뚝 끊어지고 말았다.

언니는 정말 미쳐 버린 것처럼 점점 겁도 없이 악랄하게 아버지를 골탕 먹이는 짓을 골라 가면서 하고 다녔다. 아버지가 우러러 받드는 조상의 사당에다 거지를 데려다 재우거나 숨겨 놓고 밥을 먹이던 것이며 이것을 발견한 어머니가 꾸지람을 하자 제 잘못을 사죄한다며 능청스럽게 사당에다 촛불을 켜 놓고 절을 했다.

그리곤 사당에 불이 났다. 양지는 실수인 척 일부러 촛불을 쓰러뜨려 놓고는 불을 끄지 않고 이상한 웃음을 웃으며 춤을 추던 언니를 보았다. 무서운 아버지의 딸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해 볼 도전이었으며 항거였다. 불꽃이 넘실거리는 사당에다 고구마를 널름널름 던지며 군고구마 줄 테니 네 친구들 다 데리고 오라며 낄낄낄 아주 날카롭고 높은 소리로 언니는 웃어젖혔다. 그리곤 양지를 와락 끌어안고

“우째서 안 되는가를 나는 뵈이 주는 기다. 깰 거는 깨고 뿌술 건 뿌사야 된다. 내가 이러고 나모 니는 아주 수월하게 될 끼다. 떨지마라, 겁내지 마라. 내가 말했쟤. 나는 괘안타. 내가 재미있다꼬 말 안하더나?”

주문을 읊조리듯 중얼거리던 언니의 파랗게 광채 나고 날카롭던 눈빛.

언니의 갖은 비행과 아버지의 폭행을 지켜보면서 초죽음 된 것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온갖 약과 비방을 수소문해 들였다. 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결정적인 그 비방도 사실은 어디선가 어머니가 듣고 온 것이었다.

‘낸다고 내는 꾀가 결국은 자식 죽이는 꾀가 되고 말았어’

어디선가 자신이 알아 와서 시행하다 실패로 끝난 그 비방을 두고 어머니는 늘 그렇게 한탄하곤 했다. 비방은 사뭇 원시적이었다.

갈수록 부쩍 의심이 많아진 언니는 어머니가 차려 주는 밥도 저를 해치는 독약이 들었을 거라며 잘 먹지 않았다. 그런 언니의 밥에다 어머니는 정말 잠 오는 약을 섞었다. 천지 모르게 잠든 언니의 손발을 끈으로 단단히 묶으면서 애간장 녹는 음성으로 어머니는 기원을 했다.

‘성남아 부디 씻은 듯이 나아서 이 에미하고 재미지게 한 번 살아보자’

기다렸던 아버지는 꼼짝 못하게 결박된 언니를 아래채의 헛간으로 메고 가서 새파랗게 날이 선 작둣날 밑에다 목을 걸쳐서 눕혔다. 그리고는 언니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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