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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의 기행 (86)영남루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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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13  03: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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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루 원경


활엽수의 나뭇잎이 아슴푸레하게 가을의 빛깔로 물들어오는 아침, 산자락을 끼고 도는 강물 위로 자욱한 안개가 한낮의 쾌청을 귀띔하기에 홀가분한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문산 IC에서 10번 고속도로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서 동창원 요금소를 나와 황금색으로 물든 드넓은 들녘을 헤집고 밀양으로 향했다. 낙동강을 가로지른 수산대교를 시원스럽게 건너서 밀양대로를 따라 밀주교를 지나 밀양강을 다시 건너 남천교 들머리의 한적한 골목에 차를 세우고 강둑길로 올라섰다. 빤히 건너다보이는 영남루는 무봉산 자락의 벼랑 위에서 남천강 강물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대숲을 헤집고 강섶으로 내려앉은 아랑각을 굽어보는 추강누각(秋江樓閣)은 가을 하늘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다.

남천교를 건너 마련된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지그재그의 층층돌계단을 올라 사주문으로 들어섰다. 널따란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영남루와 천진궁이 마주보며 고색이 창연한데 보물 제147호인 영남루의 웅장한 풍모가 사방을 압도한다. 아름을 넘는 주홍색 기둥은 굵기와 그 높이가 대단하여 2층 누각은 하늘 높이 우뚝하고 기둥과 기둥사이를 넓게 잡아 정면 5칸에 측면 4칸이 웅장하고 장엄하다. 공포는 기둥위에만 얹고 사이사이에는 귀면을 장식한 화반을 하나씩만 배치해 공간이 여유로워 활달한 기운이 넘쳐나서 시원스럽고, 정면 창방에 붙은 ‘영남루’의 커다란 현판 좌우로 ‘강좌웅부’라는 현판과 ‘교남명루’라는 현판이 당차고 근엄하다.

누마루에 오르면 대들보에 걸린 ‘영남제일루’라는 현판의 크기가 놀라운데 ‘이증석 11세 서’라는 주석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아무리 가늠을 해봐도 글자 하나의 크기가 1m는 족히 넘을 것 같고 필력까지 넘치는데 열한 살짜리의 글씨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더구나 마루청 정면에 걸린 ‘영남루’라 쓴 현판은 ‘이현석 7세 서’라니 같은 크기의 같은 글체로 그의 동생이 썼다니 경탄스러울 뿐이다. 사면을 개방한 드넓은 마루청은 중앙으로는 기둥 한 줄을 없애서 더 넓게 보이는데 천장 또한 한껏 높아서 가물가물하다. 내부 둘레의 고주 위에는 두 개의 대들보를 걸치고 외부 둘레의 기둥들과는 퇴량과 충량으로 연결해 가운데의 충량 위로는 청황룡이 걸타고 마주보는데 그 몸집도 우람하거니와 연방이라도 미끄러지듯 들보를 넘어 승천의 용오름이 일 것 같은 모습이 가래떡을 휘어도 이토록 유연하게 다듬을 수 있을까 하고 감탄할 뿐이다.

영남루는 능파각과 침류각을 양 익루로 배치하고 본루와 침류각 사이에는 월랑과 헌랑인 층층계단으로 이어져있어 기와지붕을 층층의 지붕으로 연결했는데 강쪽에서 보면 층층지붕이 여섯이고 마당쪽에서 보면 다섯이라 혹여 묻는 이가 있으면 대여섯이라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는 특이한 건축물로 미려한 옛 솜씨가 감탄사만 자아낸다. ‘밀양에 영남루 경치가 좋아, 팔도에 한량이 다 모여드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밀양아리랑의 노랫말 그대로다.

영남루와 마주한 천진궁으로 들러는데 바닥의 석화가 밀양아리랑을 빌어서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하고 제발 보고 가란다. 돌꽃이다. 장미의 겹꽃을 보도 블록만한 크기로 깔아놓은 듯 황금색의 푸석돌이지만 영락없는 꽃송이들이 촘촘히도 박혀 있다. 봉황이 춤춘다는 무봉산 자락을 돌꽃으로 깔았으니 외형의 수려함 말고도 깊은 뜻이 숨었을까?

마당 한쪽에는 ‘밀성대군지단’이라는 석조물이 자리를 잡았는데 아기자기하다고 보면 웅장하고 오밀조밀하다고 보면 장대해 그저 근엄한 성역이다. 돌사자를 드높이 앉혀서 외문 양쪽을 지키게 하고 내문 안의 양쪽으로는 장신의 무인석을 나란하게 세웠는데 커다란 빗돌을 받힌 기단석은 엄청난 크기의 항아리모양으로 다듬은 화강암이고 우뚝하게 솟은 오석의 빗돌에는 ‘밀성대군지단’ 이라는 전서체가 음각돼 석문석주와 석단의 조형과 구조가 경이롭고 장대하다. 신라 54대 경명왕의 첫째 왕자인 휘 ‘언침’의 능이 기록으로만 남았던 것이, 흔적의 발견으로 이를 추정하고 단을 세워 춘추로 제례를 올린다 하여 예를 갖추고 발길을 돌렸다.

 
   
▲ 아랑사


단군의 진영이 모셔진 천진궁의 정문인 만덕문을 들어서자 고색창연한 목조와가가 추녀를 길게 늘여 무게감을 더하는데 빛바랜 단청이 숙연함을 풍긴다. 안으로 들자 정면으로 단군의 진영이 봉안됐고 좌우로 후조선, 발해, 고구려, 가락, 신라, 백제, 부여, 고려 등 시조 여덟 왕의 신위가 모셔져 있어 장구한 역사의 자부심을 느끼며 향불을 피워 예를 올렸다. 천진궁 옆 뜰에는 신상을 조각한 석상 곁에 ‘태상노군 칠원성군 삼신상제’라 음각을 한 석비가 섰다. 우리나라의 신교문화의 한 단면을 엿보는 듯하다.

발길을 돌려서 대나무숲이 우거진 사이의 층층계단을 내려서서 아랑각을 찾았다. ‘정순문’이라는 편액을 단 문으로 들어서자 다시 층층석계 위로 단청이 곱디고운 단아한 ‘아랑사’가 다소곳한 자태로 능파에 푸른 남천강을 굽어본다. 안으로 제단을 마련하고 아랑낭자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졌다. 이 같은 풍모를 두고 절세가인이라 했을까, 분내음이 향긋하다.

아랑각 옆으로 대나무숲 속에 아랑낭자가 죽임을 당해 유기된 곳이라며 ‘아랑유지비’라고 음각된 작은 석비가 한 평도 안 되게 자리 잡고 있어 더없이 초연하다. 못다 푼 원한을 달래려 함인가, 예쁜 손거울에 꽃핀과 팔찌를 비석머리에 누군가가 얹어놓았다. 얼마나 애틋했으면 손가방을 열어 내놓고 갔을까, 두고 간 사람의 뒷모습이 선한데 대숲을 스치는 실바람소리에 낭자의 고영(孤靈)이 처량히도 애처롭다.

왔던 길의 계단을 다시 밟아서 언덕위의 초가집인 오두막집을 찾았다. 대중가요의 거목이셨던 작곡가 박시춘 선생의 옛집이라니 믿기지를 않는다. 손바닥만한 마루청과 방 하나에 부엌방이 딸린 초가2칸 오두막이다. 옹색한 마루청에 걸터앉으니 굽이굽이 설움이고 마디마디 한이 맺힌 옛 시절이 눈물겹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하고 일제강점기의 민족을 설움을 노래했던 ‘비 내리는 고모령’ 에서부터 가거라 삼팔선,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전거장 등 전중전후의 민족의 애사를 엮어 우리들의 심금을 울렸던 수많은 곡을 남기고 간 박시춘.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만은’ 추억의 소야곡이 되어 애절한 그리움으로 가슴을 적신다.

비탈길을 돌아서 ‘무봉산 무봉사’라는 편액이 붙은 단청이 화려한 일주문으로 들어섰다. 대웅전의 또 다른 현판은 설법전이고 요사의 현판은 ‘아동산 무봉사’다. 관아의 동쪽 산이라 하여 무봉산을 아동산이라 하고 밀양시를 흐른다고 하여 남천강을 밀양강이라 했을까. 관아가 주도적인 권위주의의 소치일까. ‘남천강 굽이쳐서 영남루를 감돌고 중천에 뜬 달은 아랑각을 비추네’하고 밀양아리랑은 오늘도 남천강에 흐르고 있고. 봉황이 춤추는데 무봉산이 어딜가나, 두어라 시빗거리로 삼아 무엇하나 하고 대웅전으로 들어섰다. 보물 제493호인 석좌불은 천년을 마다않고 중생들의 발원에 귀 기울이는데 무언스님 염불소리 아랑 넋을 달래며 영남루 굽이도는 남천강에 여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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