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구절초는 기약 없이
비는 찔찔 내리고
나는 비탈에 홀로 서서
내가 꽃을 들고 그대를 기다리네
그대는 오든 말든
-나석중(시인)
그대를 향한 내 기다림도 이젠 지쳐갈 때쯤, 또다시 가을이 오고 구절초는 피어나고 비가 내린다. 수척해지는 산야에 사람 애간장을 녹일 듯 하얗게 타오르고 있는 구절초는 구일초(九日草), 선모초(仙母草), 고봉(苦蓬)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아홉 번 꺾어지는 풀 또는 음력 9월 9일에 채취한 것이 좋다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순수’라는 꽃말을 받쳐 들고 비탈길에 선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렇다. 먼 곳 그대가 이제는 오든 아니 오든 상관 않기로 한 지도 오래되었다. 내 안에 그리움의 집 한 채 오도카니 지어놓고 여기까지 왔으니, 그대여 부디 나는 괜찮다. 이젠 바람이 불어 저 꽃잎마저 지고 말겠지. 어쩐다!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으니’(정호승) 말이다./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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