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5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51)
  • 경남일보
  • 승인 2016.10.03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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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51)

양지는 어머니의 치마말기에 얼굴을 가리고 엿보았던 그 순간의 기억을 떠올리다가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얼마 만엔가 눈을 뜬 언니가 발견했던, 자신을 겨냥하고 있는 새파란 작도와 동시에 그 무시무시한 흉기의 손잡이를 잡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험상궂은 아버지의 표정. 부모에 대한 따뜻한 훈정이 바닥나 있던 언니는 소스라쳐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다 결박된 몸뚱이를 확인하자 더욱 요동치며 절망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입까지 봉해진 상태여서 올올이 터진 핏줄로 벌개진 눈이 던져 올리는 처절한 절규란 듣는 양지의 몸에서 소름이 돋게 처절했다. 언니에게 허용되어 있는 단 하나의 몸부림은 아버지나 어머니 아무에게도 가닿지 않았다.

퍼렇게 빛나는 단두의 작두날 아래서 한 많은 젊은 청춘을 마감하는 처녀. 더구나 남도 아닌 부모들의 손에 의해 목숨이 끊어져야하는 절통한 심정을 항거할 때 언니는 온몸으로 진땀까지 흘리며 버둥거렸다.

“아부지 말해보이소. 내가 와 이렇게 죽어야 됩니꺼. 내가 뭘 그리 잘못했십니꺼. 이것도 해서는 안 된다, 저것도 해서는 안 된다. 대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에 몇 가지나 됩니꺼!!”

언니는 피어린 절박한 눈빛을 보냈지만 아버지의 냉정한 태도 중간에서 부러진 화살처럼 산산이 꺾여 떨어지기만 했다.

이윽고, 폭압과 증오로 무장된 아버지의 표정을 앙바라지하고 있던 언니의 고개가 옆으로 꺾이며 혼절을 하고 말았다. 남몰래 소리 없이 저를 죽이기 위한 방법인 줄 깨달았던 모양이었다.

그 절망에 찬 딸의 모습을 내려다보던 어머니는 외려 기쁜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냄이아부지, 딱 들은 그대로 기함했네예. 인자 정신만 채리모 됩니더. 퍼뜩 방으로 옴기입시더.”

어머니가 전하는 대로라면 기절하는 순간에 언니를 지배하고 있던 악귀는 떨어지고 악몽에서 깨어난 듯이 언니는 옛날 그 착하던 시절의 맑은 정신으로 돌아온다던 것이었다.

그러나 미치지 않은 사람에게 미친 사람을 고치는 비방은 들을 리 없었다. 얼마 만에 눈을 뜬 언니는 둘러앉은 엄마와 아버지를 확인하고는 끈으로 졸린 상처에다 안쓰러운 얼굴로 약을 발라 주고 있는 엄마를 밀치고 발딱 일어나 앉았다.

“아이구 이 등신아, 병 주고 약 주고 있네!”

멸시에 찬 음성으로 쏘아붙이며 언니는 마치 선불 맞은 맹수가 사경을 탈출하듯이 날렵한 동작으로 집을 뛰쳐나갔다. 마루 끝에 앉아서 언니의 동정을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도 처음에는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놓친 짐승을 따라잡듯이 허둥지둥 뒤쫓아서 달려 나갔다.

아버지를 되돌아보면서 언니는 욕설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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