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봉사
김성영 (시조시인·고금논술학원장)
자연 봉사
김성영 (시조시인·고금논술학원장)
  • 김성영
  • 승인 2016.10.1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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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영

우리 동네 나의 단골 마트는 주로 주인 부부가 번갈아 지키고 간혹 나이 지긋한 부인이 가게를 본다. 그런데 얼마 전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하려는데 못 보던 꼬마 숙녀가 앉아 있었다. 장난기가 발동해 평소 즐겨 쓰는 레퍼토리를 꺼냈다.

“엥? 몇 학년?”, “오학년이에요.”

“그 나이에 벌써 알바?” 똘망똘망하게 생긴 아이는 초롱초롱한 눈빛에 웃음기를 띠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 강제노동?” 더 완강하게 고개를 젓는 아이의 입가에까지 웃음이 번졌다.

“아, 그럼 자원봉사로구나?” 아이는 웃기만 하고 대답은 등 뒤에서 들려 왔다.

“맞습니다! 자연 봉사입니다. 할머니 도와주는 자연 봉사!”

돌아보니 그 ‘나이 지긋한 부인’이었다. 집으로 오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되뇌었다. ‘자연 봉사… 자연 봉사…’. 정말 자연스럽게 기분 좋아지는 말이었다. 그 분이 자원봉사라는 말을 정확히 모르는 건지, 발음이 잘못된 건지, 내 귀가 잘못된 건지, 그건 상관없었다. 그냥 ‘자연 봉사’라는 말이 신선하고 정겹게 다가와서 소중한 깨달음이라도 만난 기분이었다.

자원봉사란 말 그대로 스스로 자발적으로 나서서 하는 봉사인데,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이득을 챙기기 위한 도구로 변질된 감이 있다. 입시와 입사용 스펙으로 무장되거나 정해진 시간을 채워야 하는 의무가 되기도 한다. 결국 알바 아니면 일종의 강제노동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셈이다. 인위적으로 제도화해 초래한 부작용이라 안타깝고 씁쓸하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 말씀이나 ‘기부는 헌신짝 버리듯 하라’는 부처의 가르침이 자원봉사의 원천일 것이다. 소득 재분배와 사회안전망 구축을 통해 ‘행복한 더불어 살기’로까지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바탕은 제도 이전에 개개인의 기부정신을 포함한 자원봉사 정신에서 시작된다. 자기 과시나 명성을 쌓기 위한 욕구 충족의 수단이 아니라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냥 상대를 위해 편하게 저절로 우러나서 하는 자연스러운 봉사야말로 진정한 자원봉사, 즉 ‘자연 봉사’일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도처에서 소리없이 보이지 않게 그런 봉사를 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경의를 표한다.

김성영 (시조시인·고금논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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