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5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54)
  • 경남일보
  • 승인 2016.10.03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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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54)

흑립을 쓴 큰무당이 신대를 곧게 들고 지붕 위에 우뚝 섰다. 집안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며 온갖 귀신을 씻어 낸 뒤였다. 어머니는 솟대에 깃든 신장의 엄호를 믿고 평소에는 께름칙하다고 손도 못 대던 묵은 용품이나 집기들을 활활 타는 불구덩이 속에다 모조리 던졌다. 온 밤 내 계속되었던 굿거리도 바야흐로 종막에 이른 것이다. 죽음이 곧 삶의 시작이고 삶의 끝이 죽음이라고 무당은 말했다. 죽음과 삶 사이, 그 선을 긋는 선 위에 무당이 있고 굿이 있으며 산자는 굿으로 삶을 이어갈 힘을 얻고 망자는 이승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음 세상으로 들어간다. 이들 모두를 위로하고 서로가 작별을 고하며 치유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연속이란다. 하므로 어머니는 수술 덕을 볼 것이고 약효도 얻게 될 거라고 장담했던 무당들이었다. 그들의 말대로 만약 그런 기적이 일어난다면 양지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어 볼 힘도 생길 것 같았다.

용마루 위에서 탁, 탁, 탁, 신대를 세 번 드놓은 무당이 신대를 쳐들고 나르듯이 지붕을 내려왔다. 서슬에, 바람 같지도 않은 바람을 이기지 못한 낡은 기왓장 몇 개가 마당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온 집안을 맴돌려 부정을 친 큰무당이 앞장서서 인도를 하고 언니의 영혼을 실은 꽃바구니를 든 무당이 뒤를 따랐다. 꽹과리 치고 북 치는 무당을 따라 구경꾼들도 집을 빠져나갔다. 탁류가 휩쓸고 간 뒤끝처럼 너저분한 뜰 안에는 집채만 휑뎅그렁 높이 보였다.

사그라져 가는 화톳불이며 널린 짚단, 헝겊, 사금파리 등으로 어지럽혀진 마당, 부정을 친 소금과 쌀, 냉수 따위를 어수선하게 뒤집어 쓴 굿상 위의 뻣뻣한 제물, 흙 묻은 발자국으로 더럽혀진 방과 마루-.

양지는 이 모든 것들을 둘러보던 시선을 걷어 손목시계의 분침을 읽었다. 앞산 머리에도 반 뼘이나 햇살이 내려와 있었다. 첫차가 나갈 때까지 굿은 끝날 것이며 청소는 얼마나 진척이 될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무당들의 수고비와 뒤치다꺼리는 아버지와 이미 말이 되어 있어서 별문제 없지만 당분간 비워 놓을 집에 대한 정리 정돈에 시간을 앗길 어머니 때문에 서둘러서 청소를 마쳐야 했다.

양지는 비와 쓰레받기를 찾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농 밑이며 책상 위로 낭자하게 흩뿌려진 소금이며 부정 친 물이 흩뿌려져 발 디딜 틈도 없이 지저분했다.

“야야, 이걸 깜빡 잊었다. 너가부지 갖다 디리고 온나.”

방과 마루를 쓸어내고 걸레질을 하고 있는데 양지를 밖으로 불러낸 어머니가 식은 밥 한 덩이를 비닐봉지에 싸서 내밀었다. 양지는 단박 그것이 언니의 골분에 버무려서 뿌릴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날짐승들에게 보시를 하는 뜻도 있지만 새들이 날아다니다 요행히 명당에다 똥을 누면 명당을 찾아 묘 쓴 덕을 얻기 위해서도 옛날부터 해오던 민간의 풍습이었다.

“굿이 끝날 라모 안즉 멀었으니께 천천히 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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