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전송한 K2 등반 사진 화제
히말라야에서 전송한 K2 등반 사진 화제
  • 최창민
  • 승인 2016.10.1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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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일보 사진보도 히스토리-1989년 복간 이후 중심으로
◇히말라야 K2 등반 때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 위성 전송= 1999년 세계 2위봉 파키스탄의 K2(8611m)를 등반할 때 본보는 현장에서 직접 사진을 촬영하고 전송해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본보 기자였던 박명환(현 도교육청 홍보안전담당관실 차장)씨가 직접 등반에 나서 생생한 사진을 촬영해 독자들에게 제공했다. 당시로서는 중앙지에서도 하지 못한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때 사진을 전송한 것은 위성휴대전화(INMARSAT: International Mobile Satellite Telecommunication Organization)인 이른바 ‘인마 TOT’였다. 우리나라는 1985년 이기구에 가입했으며 운용 협정 당사자인 한국통신(KT)이 인마샛 지구국을 충남 금산에 운용했다.

인마샛은 기존 육상의 기지국과 교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성과 통신을 하는 것으로 위성신호를 수신해 전화 할 수 있고 사진도 전송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대부분 해상 선박용으로 사용됐으나 2000년 이후 히말라야 등 산지에서도 많이 활용했다.

1999년 K2 원정에서는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한 후 컴퓨터에 저장하고 위성전화기를 연결해 전송했다.

지구 궤도에 위치한 위성에서 전파를 받아 사용하는 만큼 신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잘 걸리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또 당시 인마샛이 일반화되지 않아 통신료가 초당 100원에 달할 정도로 비쌌다. 사진 1장에 40분정도 걸렸으니 장당 20만원이 넘은 셈이다. 더 울화통 터지는 일은 사진을 보내다 위성이 수신가능한 궤도를 지나가버리면 중간에 끊어져 사진전송에 실패하게 됐는데 이런 경우에도 통신료는 에누리없이 부과돼 큰 부담이 되기도 했다.

◇디지털 등장, 필름시대의 종말 예고= 2001년 본보 사진부에 일본 올림푸스사의 디지털 카메라가 도입됐다. DSLR카메라는 아니었지만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연속촬영이 가능해 인기를 끌었다.

단점은 화소를 올려 고화질의 사진을 촬영하면 속도가 느렸고 셔터반응도 1초정도 걸렸다. 밧데리팩이 달린 기존 필름카메라를 동시에 사용했기에 적응이 잘 안됐다. 그러나 이는 필름시대의 종말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사진전송 히스토리에 성격이 약간 다른 디지털카메라 얘기를 꺼낸 것은 사진전송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기 때문이다.

2001년 7월 24일 진주시 판문동 부근 진주∼대전 고속도로에서 관광버스가 30m아래로 추락해 40명의 승객 중 19명이 사망(뒤에 20명으로 늘어남)하고 20여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형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진주∼대전고속도로가 개통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 발생한 사고로 큰 충격과 함께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사고였다.

이때 필름카메라를 동시에 사용했으나 컬러분해가 비교적 쉬운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신문에 실었다. 디지털 사진이었기 때문에 마산(현재 창원)에서 발행되고 있던 경남도민일보에도 쉬운 단계를 거쳐 제공됐다.

이후 DSLR형 NIKON D-2 기종이 보급되고 개인 노트북도 지급됐다.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면서 사진전송작업은 일이 아니라 사진기자가 해야하는 하나의 단계에 불과한 것으로 변해갔다.

디지털 카메라와 개인휴대전화기 등장은 사진전송의 때와 장소를 초월시켰다.

디지털카메라, 노트북, 개인휴대전화기의 최대수혜자는 사진기자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지리산 정상에서 촬영 즉시 디지털카메라에서 플래시메모리를 뽑아 컴퓨터에 넣은 다음, 화상파일을 불러내고 이를 휴대폰을 이용, 무선 인터넷으로 회사에 보내면 끝이었다.

중요한 축구경기가 열리는 날에도 카메라 노트북 전화기만 있으면 거의 실시간 중요한 사진을 촬용해 전송할 수 있게 됐다.

◇2004년 충북 제85회 전국체전= 2004년 10월 그러니까 1990년 이후 14년만에 충북 청주에서 제 85회 전국체전이 다시 열렸다.

또 세상이 바뀌었다. AP사의 16-S, 리팩스 35도 수명을 다하지 못한 채 퇴역했고 디지털카메라와 노트북으로 대체됐다.

특히 휴대전화기에 소형카메라가 달린 제품이 등장하면서(당시에는 카메라폰이라고 함)세상은 또 한번 진화하게 된다.

예를 들면 카메라가 달린 휴대전화기로 사진을 찍어 바로 무선전화기로 전송하는 것이었다. 이는 시간과 공간을 하나의 휴대전화기에 집어 넣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신문사는 메인사진용은 DSLR형 카메라로 사용하고 휴대전화기로 찍은 사진은 간단한 인터뷰용으로 사용했다.

실제 경남선수단의 역도 금메달 3관왕이 유력시됐던 경남체고 김민희의 취재가 예다.

전년도 3관왕이었던 그는 이 대회에서 용상을 놓쳤지만 인상과 합계에서 우승해 경남의 첫 2관왕이 됐다. 기사와 사진 등 챙길 것이 많아 급한 마음에 김민희의 인터뷰사진을 휴대전화기가 달린 카메라 즉 카메라폰으로 마감하기도 했다.

당시 이 상황을 묘사한 칼럼이 본보에 실렸다. “김민희 씨 좀 웃어보세요” 몰려든 기자들의 잇단 셔터소리…, 그의 사진을 차가 있는 주차장까지 걸어가며 카메라폰으로 마감했다. 마감 후 숙소에 돌아온 뒤 후배기자가 카메라폰으로 김민희를 찍고 있는 장면의 (나의)사진을 보여줬다.

◇백두산에서 사진전송= 2006년 12월 31일 본보 취재팀은 정해년(丁亥年·2007년)을 앞두고 백두산 천지와 천문봉에 올랐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마지막 한해를 보내고 또 해맞이를 통해 복간 이후 경남일보의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고 지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되새겨 보자는 의미였다.

병술년 31일에는 ‘해맞이를 위한 국내 첫 천지 횡단’, 정해년 1일에는 백두산 천문봉 정상에서 ‘해맞이와 경남인 민족화합 기원제’를 실시했다.

진주지역의 지리산 여행사와 함께한 이 행사에는 도민 40여명이 참가했으며 한겨울에 진행된만큼 추위와 날씨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천지 횡단 때는 날씨가 쾌청해 기분좋게 진행됐으나 이튿날 천문봉에선 궂은 날씨로 인해 일출을 볼 수가 없었다. 강한 바람에 화산재 부석까지 흩날려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였는데 좀 과장하면 날려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1일날 천문봉에서 해맞이와 경남인 민족화합 기원제’가 열렸다.

‘단기 4340년 정해년 1월 1일 바야흐로 겨레의 서광을 밝히는 찬란한 정해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천지신명 일월성신과 한반도를 주관하시는 영산 백두산대신께 엎드려 고하나이다.<중략> 정해년을 맞아 민족합일과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해 우리는 대한민국 지방지의 효시 100년 신문 경남일보와 지리산여행사가 심신을 합해 경남인의 염원을 여기에 담아왔나이다. 풍전등화와 같은 위태로움 속에서도 내일의 번영과 도약을 다짐하기위해 올리는 기원제이옵기에<중략> 뜻 한 바대로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굽어 살피시어 무한한 복록과 백두산 정기의 행운을 내려주시옵소서’

애국가를 부르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백두산에서 촬영한 사진은 2007년 정해년 1월 2일자 새해 첫날 신문 1면에 게재됐다. 당시 나는 사진을 전송하기 위해 일행과 떨어진 뒤 백두산 인근 도시 호텔로 달려가 이 장면의 사진을 전송했다. 이때 사용한 것이 노트북과 디지털카메라였다.

지리산 여행사와 함께 했던 40여명의 동행인이 백두산 해맞이 행사가 끝나고 귀국해 경남일보에 돌아왔을 때 중국에서 전송한 사진이 게재된 신문을 그들 손에 건넬 수 있었다.

초고속 멀티미디어 시대, 사진기자들은 사진전송에 있어서 큰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를 가능케 했던 것이 바로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사진 전송기이다. 전송기 발달사는 신문사진뿐 아니라 현대 통신 문명의 발달사라고 할 수 있다.

최창민기자

 
2007년 1월 1일 백두산 천지에서 촬영한 사진을 본사로 전송해 2일 아침신문 1면에 보도한 사진.

 
2001년 진주―대전고속도로 진주시 판문동 부근에서 발생한 대형 버스사고를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해 보도한 사진.
이 사진은 마산지역 일간지에 제공돼 25일자 1면에 게재됐다. 사진제공=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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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충북 청주에서 열린 전국체전 중 카메라폰으로 사진을 촬영해 전송한 금메달리스트 김민희의 인터뷰 사진

 
백두산 일원에서 취재한 화보
본보 박명환기자가 히말라야 K2 원정에서 경남일보 사기를 들고 촬영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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