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숙씨의 사콤달근 밥차 ‘장 뜨기’
현숙씨의 사콤달근 밥차 ‘장 뜨기’
  • 김지원·박현영
  • 승인 2016.10.2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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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을 수확해 메주로, 장으로 이어지는 맛의 순환
 
현숙씨와 손윗동서 진정숙씨가 장을 떠내고 남은 메주를 치대고 있다. 메주를 치대 따로 담은 것이 된장이다.

 

[된장, 돌고도는 삶의 순환]https://youtu.be/R4VRN4rdXA4


지난 20일은 현원당 장독대에서 가장 큰 장독에 정성스레 담가둔 장을 뜨는 날이었다. 올 봄 4월9일 장을 담근지 195일만에 장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장이 익어가던 한여름. 텃밭에 심었던 콩은 수확을 마쳐 30되의 메주콩이 마련됐다. 내년 장을 위한 준비작업이 벌써 한창 인 셈이다. 내년 장을 위한 콩농사와 올해 장이 함께 익어가는 현원당의 여름. 장 농사 중요성이 새삼 느껴진다.


긴 앞치마에 토시까지 서둘러 준비를 마친 현숙씨는 누가 올거라며 문밖을 내다봤다. 장을 체에 걸러서 다른 독에 옮겨 담는 과정은 두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이웃해 살고 있다는 현숙씨의 손윗동서 진정숙씨(75)가 주름진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띄고 나타났다. 대평서 25살에 이곳 수곡으로 시집을 와서 평생 살았다는 정숙씨는 4남매를 키워내고 부군과 두 식구만 시골생활을 한다. 정숙씨는 장 뜨는 일을 얼른 도와주고 고구마를 캐러 가겠다며 서둘렀다.

“용시 챙겨놨나?”
“형님 집에 안 있나?”

용시? 난데없이 두 사람이 용시라는 물건을 찾았다. 우리집에는 없다는 정숙씨의 말에 안채로 들어간 현숙씨가 길다란 대나무 소쿠리(?) 하나를 들고 나왔다. 술이나 장처럼 맑게 떠내야 하는 액체를 거르는 기구다. 장독에 용시를 박아 넣어 여기에 고인 장을 체에 한번 더 걸러 작은 독에 담는다.


 

장독을 처음 열었을 때-메주를 누른 대나무를 꺼내는 과정-메주사이를 비집고 용시를 꾲은 모습-용시에 고인 장을 바가지로 퍼서-체에 한번 더 걸러 장독에 담는다. 짙은 갈색에 농도가 느껴지는 장.(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현숙씨가 장독대를 향해 출발하며 비장하게 한마디 내뱉는다.
“가보자.”

195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장독을 꽁꽁 싸맨 비닐과 한지를 열어봐야 올해의 장농사를 가늠할 수 있다. 장독대에서 가장 큰 장독의 뚜껑을 드디어 열었다.

비닐과 한지를 걷어낸 현숙씨가 탄성을 질렀다. 빛깔이 너무 좋다며 장을 찍어먹어 본 현숙씨는 “아이고 맛도 너무 좋다. 성공이다”며 흥겨운 목소리다. 메주를 누르느라 넣어둔 대나무와 고추, 숯 등을 들어내고 장독을 가득 메우고 있는 메주를 몇 덩이 덜어낸다. 소금물에 삭혀진 메주는 일부는 흩어져 장독을 떠다니고 일부는 아직 뭉쳐진 채로 남아있다.

현숙씨는 메주를 들어낸 빈 틈을 비집고 용시를 밀어넣었다. 덜어낸 메주를 보고 된장 빛도 너무 좋다며 연이은 탄성. 정숙씨가 메주를 뒤적이며 숯찌꺼기며 잡티들을 덜어냈다. 두 사람은 용시에 고인 장을 작은 장독으로 옮겨담았다.

투명한 까만 색일줄 알았는데 약간 농도가 느껴지는 갈색 액체였다. 너무 짜지 않고 구수한 맛이 느껴졌다. 현숙씨는 용시에 들어가기에 좀 커보이는 바가지를 가져왔었는데 정숙씨는 “이게 들어가냐”며 타박을 놓치지 않았다. 알고보니 현숙씨에게 정숙씨는 시어머니 대신이란다. 시어머니의 음식비법들을 동서에게 내려받은 것. 말로는 타박을 해도 얼굴은 계속 웃고 있다.현숙씨의 부군인 류회장의 형제 중 이들 두가족만 수곡마을에 살고 있다고하니 동서사이가 친한 것이 이해가 된다.



 
현숙씨가 장독에서 메주를 건져내고 있다. 동서 진정숙씨는 장독에 넣을 용시를 들고 있다.


“현숙선생님께 유일하게 잔소리 하시는 분이겠어요.” 했더니 현숙씨는 “맞다”며 너털웃음을 짓고 정숙씨는 볼에 가득 주름이 잡히도록 소리없는 웃음을 웃는다.

바닥쪽의 장이 떠지지 않자 현숙씨는 용시를 옆으로 밀치고 메주를 들어냈다. 치대기 좋은 널찍한 양재기에 메주를 덜어낸 다음 두 동서는 장독대 앞에 쪼그리고 앉아 메주를 치대기 시작했다. 금새 익숙한 모양이 나타났다.

바로 된장. 현숙씨가 처음에 된장색도 너무 좋다고 할때는 그저 저 메주로 된장을 만들려나보다 했는데 장독에서 꺼낸 메주를 몇번 치대니 그게 바로 된장이었다. 장과 된장이 동시에 만들어지는 거였다니...

장을 뜨고 메주를 치대는 과정을 몇번 반복하니 3되짜리 장이 한 독, 그보다 조금 작은 된장독에 된장이 두 독 나왔다. 양재기에 치댄 된장을 쓸어담는 정숙씨를 보며 현숙씨가 또 한마디 했다.



 
장을 걸러낸 메주를 주물주물 치대서 독에 눌러 담는다.-위에 소금을 조금 뿌리고-비닐을 한장 깐다음 소금으로 덮는다. 벌레가 들어오더라도 소금 위에 알을 낳게 하려는 방법이다.-한지와 비닐로 윗부분을 잘 막아서 뚜껑을 덮어둔다.


“우리 형님은 진짜 꼼꼼해, 그릇에 한 방울도 안남았다.”
“하모, 이 아까운걸 버리나.”

정숙씨도 연신 양재기를 쓸어담으며 장단을 맞춘다.

핫초코 같은 색의 장은 한지와 비닐을 덮어 고무줄로 꽁꽁 묶었다. 꼭꼭 눌러 담은 된장은 굵은 소금을 조금 뿌리고 비닐을 한장 덮은 다음 벌레가 슬지 않게 소금을 가득 뿌려서 한지와 비닐로 봉했다. 갓 떠낸 장과 된장은 바로 먹을 수 있지만 3개월 정도 숙성하면 맛이 더 좋아진다.

소금물과 메주, 그리고 솔향 날리는 봄과 뜨거운 여름, 코끝 찡한 가을까지 195일이 빚어낸 장과 된장. 두 동서의 흥겨운 토닥거림 속에 곱게 떠낸 장은 이제 또 현숙씨네 밥상에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할테다. 콩을 걷어낸 현숙씨네 텃밭을 보고 여기서 콩이 서른되나 나왔냐며 시숙을 칭찬하던 정숙씨는 콩이 잘돼야 또 그걸로 메주를 삶고 내년에 또 장을 담그지 한다. 돌고 도는 농사와 삶의 순환이다. 김장배추도 잘 크고 있네 하던 정숙씨는 고구마 캐야 한다며 집으로 향했다. 현원당 장맛에는 털털한듯 다정한 가족사랑이 고였다.

김지원·박현영 미디어기자



 
현원당 장독대. 새로 담근 장과 된장, 처음 수곡에 들어와 담근 모장, 4년차에 접어드는 겹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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