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주는 여자
박상재 (진주 봉곡초등학교장)
죽여주는 여자
박상재 (진주 봉곡초등학교장)
  • 박상재
  • 승인 2016.10.1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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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재
얼마 전 ‘죽여주는 여자’란 영화제목을 보고는 내심 ‘에로물이 아닌가’하는 호기심으로 극장을 찾았는데, 그건 기우(杞憂)였다. 영화를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늙은 배우 윤여정의 한물 간 매춘부 역할에 곧 빠져들었다. 일명 ‘박카스 아줌마’로 불리며 무료한 노인들이 모이는 곳에서 박카스를 매개로 “잘~ 해 드릴게요”하는 노골적 멘트가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었다. 영화에서 윤여정은 3명의 고독에 몸부림치는 일흔이 넘은 남자를 모두 죽여준다. 평상시 ‘아는 사람들(?)’ 부탁이라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노인병원에서 농약으로 죽음을 도와준다.

자식들을 그리워하다가 농약으로 죽자 자녀들은 부검도 거부하고 남긴 유산만 욕심낸다. 한 사람은 산위에서 밀어 죽이고, 한 사람은 호텔에서 수면제로 마지막 죽음을 처리해준다. 마지막 죽음을 처리해준 보답으로 약간의 돈을 받아 한집에 사는 지인들과 회식하다 형사한테 끌려가며 ‘봄에 수감되면 안 되나요?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데….’ 중얼거리며 차창 밖으로 뿜어내는 한스러운 담배 연기 한 줄기가 마치 자기의 인생처럼 허공으로 날아가 흩어진다. 그리고는 쓸쓸한 죽음 끝에 납골당에 무연고로 안치돼 영화가 끝난다.

한동안 멍하게 나는 아무도 없는 극장에서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닿을 수 없는 거리는 그리움을 낳고 메울 수 없는 거리는 외로움을 낳는다. 가까이 있다 멀어지면 그 거리만큼 눈물이 흘러 이별의 강은 그래서 마르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리움과 외로움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사무침으로 변해 하늘이 준 천명을 어기고 목숨을 끊는다 말인가.

노인 5명 중 1명은 친구나 대화상대 없이 혼자 산다고 한다. 죽음만이 이별은 아니다. 생을 이어가며 만나지 않는다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잊혀진 사람’이라 한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21%가 노인인구이고, 자살률은 남성기준 10만 명당 100명으로 세계최고다. 자녀와 동거하지 않는 독거노인도 138만 명 중 20.8%나 된다.

초록이 지쳐 단풍으로 물드는 이 좋은 계절을 나 혼자 보낼건가. 그래 ‘잊혀진 사람’이 되기 전에 전화번호를 뒤져 오랜만에 지인들과 정이 담긴 차 한잔 나눠보자.
박상재 (진주 봉곡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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