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세상에 비밀은 없다
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경일시론] 세상에 비밀은 없다
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 김진석
  • 승인 2016.10.24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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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는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 신라 제48대 경문왕은 귀가 유달리 컸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숨기고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철저하게 막고 있었다. 왕의 의관을 만드는 복두장(服頭匠)은 이 비밀을 알고 있었지만 평생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살았다. 입이 근질거렸지만 목숨이 아까워 평생 참고 살다 죽게 돼서야 대나무밭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의 귀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후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나 순식간에 그 소문이 퍼져 나갔다. 동화로도 각색돼 어린이들에게도 재미있게 읽히고 있는 이 이야기는 비밀을 지키는 것이 당사자나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자신에 대해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을 사회과학에서는 ‘자기 개방’이라고 한다. 많은 연구결과가 말해 주듯이 자기 개방을 많이 하는 사람이 즐겁고 건강하게 산다고 한다. 우리는 긍정적 내용이면 다른 사람의 핀잔을 받으면서까지 기꺼이 공개하고 싶어 한다.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끄럽거나 비난받을 내용은 가능하면 다른 사람에게 감추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비밀을 지키는 데는 그만큼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그 대가가 따른다.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심리적 에너지의 총량은 한정돼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에너지를 필요한 여러 곳에 슬기롭게 잘 배분해서 써야만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유·무형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한정된 심리적 에너지를 비밀유지를 위해 사용한다면 당연히 꼭 필요한 곳에 쓸 에너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특수한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밖에 없는 ‘묶인’에너지를 풀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여러 곳에 골고루 에너지를 배분해서 쓸 수 있게 된다.

비밀은 그 순간, 단기적으로는 지켜질 수 있을지 몰라도 오랫동안 지켜질 수 없다. 시간이 문제지 언젠가는 밝혀지게 돼 있다. 특히 요즘처럼 다양한 접촉방법과 전자통신수단이 발달한 개방된 사회에서는 비밀을 영원히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자신이 스스로 밝히는 것이 어떨까. 우리 모두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부족한 점을 스스로 밝히고 지금까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묶여 있던 에너지를 해방시켜 더 바람직한 곳에 사용하는 것이 슬기롭게 사는 지름길일 것이다.

‘뷰티풀 마인드’는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시 프린스턴대학 교수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존 내시 교수는 한평생 조현증(정신분열증)을 앓았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고, 한평생 치료를 받았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정신병자라는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려고 파견된 노벨위원회의 조사관을 만나는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강의가 끝난 후 학생들과 만나던 존 내시 교수는 낯선 사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마침 지나가던 여학생에게 “학생에게도 이분이 보입니까”라고 질문을 한다. 그는 자신이 환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꺼이 받는다.

자신의 약점은 어떻게든 감추려고 급급하면서 다른 사람의 결점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침소봉대’하는 알량한 세태에, 오히려 자신의 실수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존경스럽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현명하게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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