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58)
“소용없다. 다 소용없다!”
잿간 옆에 있던 오줌동이를 들고 와서 끼얹으려던 아버지는 사태를 이미 다 파악한 얼굴로 내던지듯이 오줌동이를 파기시켜 버렸다.
“니까지 심바람 시키서 집을 내보낸 데는 다 알쪼가 있는 기라.”
양지는 아버지가 뭐라 하건 곧이듣지 않고 얼음 잡힌 구정물통을 높이 치켜들다가 놓쳐 버렸다. 아버지가 그녀의 손을 낚아챘던 것이다.
“헛심 씨지 말고 곱게 보내라. 저 세상에 가서나 좋은 데 가그로. 뜻대로 고이 보내란 말이다”
그녀는 악에 받친 고함을 지르며 아버지의 손을 뿌리쳤다.
“그런 말이 어딨어요. 그런 말하려거든 여기 계실 필요가 없어요”
그 사이에 불을 끄던 사람들이 한편으로 몰리며 한 목소리로 외쳤다.
“집이 흔들린다―!”
“기와가 튄다―!”
화염 속에서 튀어나온 크고 작은 기와조각이 몰려 있는 사람들 위로 파편처럼 날아왔다.
“아이고, 집이 무너진다―!”
누군가의 위험신호를 듣고 사람들은 다시 뒤로 물러섰다. 불똥을 피해서 물러 선 사람들의 긴장한 눈길 앞에서 한 묶음이던 커다란 불꽃이 불끈하고 한 번 동체를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비틀리듯 힘없이, 잉걸불이 된 서까래가 기둥과 함께 비틀어지며 쓰러졌다.
영광보다는 욕됨으로 밖에는 기억되지 않는 고가, 죽은 하루살이 떼처럼 공중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마지막 그을음….
해묵은 집채가 불타 없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터를 다지고 축을 쌓고 안정된 주춧돌 위에다 큰 기둥을 세우고, 간을 질러 방을 만들고 공간마다 소복소복 꿈을 키운 집이다. 천년만년 전승될 것을 기대하며 자자손손 자식을 낳고 기른 집이다. 넓은 울타리를 안전하게 만들고 터전을 넓히고, 그런 욕심 아닌 욕심으로 지켜온 가문이다. 그러나 이룩하는 긴 세월에 비해 소멸은 순간이다. 어머니의 입으로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실화가 분명한 화재로 인한 소멸은 더욱 그런 망연함을 자아냈다.
덩실하게 버티고 있던 집이 사라지자 황량하게 뚫린 시야 속으로 황무지로 변한 넓은 대밭과 안장산의 정기를 받기 위한 혈점을 찾느라 오밀조밀 조성되어 있는 조상들의 무덤이 마치 우르르 몰려오는 적진의 탱크부대처럼 연무 속으로 조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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