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6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62)
  • 경남일보
  • 승인 2016.10.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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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62)

가진 자의 위세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마음이 불편해진 양지는 이 자리마저 얼른 파했으면 싶었다. 이런 양지의 기색을 눈치 챈 듯 명자어머니도 마지막 인사를 했다.

“치료 잘 받고 와요. 아까 말한 거는 내가 알아서 챙겨 가모 된깨 걱정 말고.”

“그래 우리 집 양반이나 우리 아아들 모두 선 자리가 하도 기구해서 그렇다는 것만 알아주면 내사 더 바랄게 없어.”

명자어머니까지 돌아가고 둘만 남았다. 양지의 착잡한 기분을 눈치 챈 어머니는 자신이 덮고 있는 이불 한쪽을 들춰 보이며 손짓으로 양지를 불렀다.

“니 눈에는 이 에미가 참말로 보추 없이 불쌍해 보이쟤?”

“그래, 그때 엄마가 쪼끔만 용감하고 앞날을 내다보는 현명한 눈을 가졌더라면 우리들의 입지가 이렇게 막막하지는 않지”

언니가 그렇게 죽고 난 뒤 실성한 사람처럼 삶에 대한 회의에 빠졌던 어머니는 이것저것 다 무시하고 이 괴로운 지역을 떠나 살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자라에 놀란 아버지의 솥뚜껑에 대한 감시는 한층 더 강화되어 딸들은 물론 어머니까지 위수령 같은 출입통제가 내려졌다.

“니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짐승도 새끼 딸린 에미 잡기가 제일 쉽다꼬 호랭이 잡는 포수들도 카는 소리다”

결국 딸린 자식들 때문에 자신의 의지대로 곧은 심정을 펼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정곡을 찔렸으나 긍정의 빛을 보일 수가 없어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으려니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어머니는 말을 이었다.

“호냄이 정냄이꺼정 너그들이 낼로 불쌍키 생각하고 한편으로 또 밉어하는 것도 다 알고 있다. 그렇지만 사람이라 카모, 자슥이라 카모 응당 안시러바서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니깨 에미는 되레 너그한테 고맙기 생각하고 서운한 마음은 털어 내면서 살았다. 그렇지만….”

말하다 말고 어머니는 목이 마른지 양지가 준비해서 윗목에 둔 보온병에서 더운물을 조금 부어 마른입을 축이더니 이내 상을 찡그리며 진통제를 찾아먹고 남은 물을 다 마셨다. 한결 평온해진 어머니의 음성이 다시 흘렀다.

“사람이, 이런 걸 팔자소관이라 카능가, 사는 기 참 마음대로 뜻대로 안되더라. 낸들 우찌 남사는 듯이 내도 이렇게 산다 싶게 와 안 살고 싶었겠노. 내 딴에는 깜냥대로 열심히 살아 볼끼라꼬 허기야 바기야 진날 갠날 없이 애는 썼다만도 일가 논기 아무것도 없으니 뭐라꼬 발명을 하것노. 걸핏 하모 너가부지 하는 말대로 이 집에 와서 내가 해논기라꼬는 병주머니 되게 몸뜅이 망친 것 빼고는 참말로 해 논기 아무것도 없다. 아무 것도…, 참말로 아무것도 없다. 내 앞에 채인 일로 누한테 전가시키고 내몰라라 몸을 빼것노. 용기도 없었지만, 또 용기가 있다 캐도 모든 걸 떨치고 외로 나서기로는 친가로 봐서나 외가로 봐서나 걸리고 얽히는 기 너무 많아서 그 용기가 외려 칼이 되서 나를 베는데 지 죽을 짓이야 길래 할 수 있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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