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6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65)
  • 경남일보
  • 승인 2016.10.0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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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65)

기다리는 무엇이 있는 사람에게는 십분도 초조하다. 더구나 밤이며 달도 없는 캄캄한 어둠, 언제 걷힐지도 모르겠는 두터운 암흑의 한가운데 포위된 듯이 혼자 우두커니 깨어있는 시간에 어머니는 무서운 상념들에 시달렸을 것이다. 편주를 탄 듯 고독했지만 마음은 이외로 편안했을지 모른다. 끝없이 지고 가야할 ‘무거운 짐을 이제 내려놓게 된 홀가분함’ 이란 당신의 표현은 심중에서 우러난 진정이었을 것이다.

진통제 한 줌을 삼키고 나니 수그러져 주는 병소의 아픔도, 사양했지만 굳이 동행해 주겠다는 길동무처럼 야릇한 친근감을 느끼며 그래서 어머니는 평온을 가장해서 태연해졌던 지도 모른다. 이제 매인데 없이 활발해진 하나의 자연인으로, 자신의 능력을 신탁한 한껏 자신 있는 음성으로 그렇게 말했을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우리를 괴롭히던 불행은 내가 다 안고 가마. 우환재책 없이 앞으로는 너것들 하는 일들 모두 잘 될끼다.”

갈수록 되살아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복음. 양지는 영원히 극복 못할 어머니 앞에서 더욱 뼈울음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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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봐서라도 동생이 정신을 차려야지. 말 안하는 사람이 속은 더 상하는 법이다. 누가 뭐라 캐도 외숙님은 자신이 최 씨라고 믿고 양반 핏줄의 긍지를 품고 사신 분이다. 양반은 항상 권속들에 대한 책임감과 가문의 명예에 대한 중압감을 느끼고 산단다. 자신의 업적이 가문과 직결되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쌍놈의 가문으로 찍혀지면 자손들의 생활까지 영향을 받는다고 여기는 게 지방 토호들의 머리에 배인 이중적인 사상인거라. 문벌을 생명같이 여기고 살아 온 어른이니 자신의 의무라고 여기는 자손번성까지 뜻대로 안 되는 인생사에 한탄인들 오죽했겠나.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안했지만 이런 불미스런 사단의 뿌리까지 긴가민가 숙덕거리기 시작하니 본인은 오죽 심상했을 란가, 부부로 평생을 사신 외숙모님은 이해하고 따르신 거라.”

고종오빠 장현동은 망연자실한 양지를 부추기느라 무슨 말로든 자극을 주려했지만 양지의 귀에는 그런 말들이 좀체 들어오지 않았다.

졸지에 어머니를 잃은 충격 이상으로 큰 이유는 어머니에 대한 그토록 강한 애착의 끈에 자신이 결박되어 있었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 때문이었다. 꿈을 꾸었던 것 같기도 했고 허깨비에 홀렸던 것 같이 넋이 쑥 빠져버린 것 같았다. 그토록 끈질기게 부여잡고 있던 삶의 끈이 이렇게 속절없는 허무로 사라져도 되는 것인지, 실망스럽고 황당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서히 억울함과 분노로 뒤범벅이 된 혼란함을 이끌고 왔다. 남들은 가볍게 평범하게 살아도 되는 것을 자신이 내린 생에 대한 지나친 의미 부여에 자신이 갇혔던 것을 양지는 아프게 깨닫지 않으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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