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가을비가 내리는 이유
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경일시론] 가을비가 내리는 이유
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 경남일보
  • 승인 2016.11.0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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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만추에 접어들고 있다. 산과 들이 붉고 노란색으로 옷을 갈아입어 화려하다. 무덥고 메마른 날과 장마, 태풍을 견딘 들판은 올해도 풍년을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무슨 청천벽력과 같은 변고인가. 대통령과 최순실로 이어지는 게이트로 온 나라가 패닉상태에 빠졌다. 언론은 연일 최순실 게이트에 관한 소식을 쏟아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추측보도인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나아가 정부를 믿지 못하는 불신이 하늘을 찔러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

정치권은 대통령 하야냐, 중립내각 구성이냐를 논하며 이미 박근혜 정부의 퇴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온갖 패러디와 희화화, 비웃음과 자조가 멍든 국민들의 속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우왕좌왕 갈피를 못잡고 있다.

민주화가 진행된 노태우 정권 이후 역대 대통령이 단 한번도 제대로 임기를 마친 적이 없다. 모두 임기말에는 각종 게이트와 친인척, 측근 비리로 지지율이 10%대로 곤두박질하고 집권당을 탈당해 레임덕에 허덕이다 정권을 넘겨주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국민들은 적어도 박 대통령마저 측근 비리로 임기를 마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가족마저 청와대 접근을 막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상 초유의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를 맞고 있다. 기대가 실망으로, 실망이 절망으로 곤두박질치는 불행을 겪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트럼피즘에, 영국은 블랙시트에 몰입돼 있어 정치적 시련이 세계적 추세라지만 행복지수 1위의 덴마크는 휘게(hegge)가 대세인 것을 보면 우리의 최순실 게이트는 분명 불행이다.

이제는 냉철한 판단과 지혜로 불행을 수습해야 한다. 4·19혁명 이후의 정국과 노태우 대통령 이후 역대 정권 말미의 불행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 3년여의 세월이 모두 허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허망하다. 그중에는 국민이 희망을 싣고 기대를 걸어온 것도 분명히 있다. 웃자라고 병든 가지를 과감하게 도려내는 외과적 수술도 해야 하지만 열매를 맺을 씨눈이 있는 가지는 잘 보호해야 한다.

지금 검찰은 그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빠른 시일 내 한줌 의혹 없는 명확한 실상을 국민 앞에 내놓고 난무하는 온갖 허상은 하루빨리 잠재우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막중한 안보와 심상찮은 경제가 우리의 앞길을 붙잡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는 다시는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밝은 미래사회를 위한 헌법을 만드는 것이 당면한 과제이다.

더 큰 불행을 몰고 올지도 모를 씨앗이 지금도 자라고 있다. 승복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극한대립의 정치집단이 그러하고 대권을 꿈꾸는 잠룡들의 정치적 취향과 노선이 다음 정권과 정치토양을 가늠할 수 있다. 법으로, 제도적으로 장치하지 않으면 지금 자라고 있는 불행의 씨앗이 다시 국민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만추다. 이 계절에 비가 잦은 이유는 대책 없이 뜨거웠던 지난날을 식히라고, 정신 차리라고,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열정을 솎아내고 꼭 필요한 것만 남겨 두라고 비는 내리고 낙엽은 진다고 시인은 말한다. 탐욕의 끝은 파멸임을 지금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모든 것이 유한하고 권력은 짧다는 것을 떨어지는 낙엽이 가르쳐 주고 있다. 만추의 계절, 추락하는 것은 낙엽뿐만은 아니다. 고작 칠십 생애에 한 움큼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을 알면 답은 나온다.
 
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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