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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느림의 섬, 청산도생각의 근원을 찾아 느리게 걷기
김귀현  |  k2@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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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07  21:5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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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지정된 청산도.

◇한을 흥으로 푸는 서편제 길

아버지 유봉과 아들 동호, 그리고 양딸인 송화가 흥에 겨워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팍팍한 고샅길을 넘어가던 ‘서편제’의 장면, 우리나라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명장면을 탄생시켰던 곳, 그 장면을 떠올리기만 하면 영화의 대사 중에 나오는 ‘살아가는 것이 한을 쌓는 일이고, 한을 쌓는 일이 살아가는 일이 된다’던 그 ‘한’을 아리랑 가락으로 속 시원하게 풀어주던 ‘흥’이 떠오른다. 송화가 눈을 잃고(한) 마침내 얻은 소리(흥), 그 한과 흥이 함께 어울려 노래가 되는 세상을 만나고 싶은 사람은 모두 청산도로 가서 진도아리랑 가락에 맞춰 한이 흥이 돼 청산도 앞바다 파돗살로 춤추는 힐링을 맛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힐링여행을 떠났다.

지난 봄, ‘느림은 행복이다’라는 주제로 청산도 슬로걷기 축제 때 전국에서 탐방객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 배편 예약이 안 돼 청산도의 유채꽃과 청보리를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 영화 서편제가 만들어낸 명장면을 떠올리며 가을 청산도의 모습을 담기 위해 떠난 청산도행, 국민체력센터(원장 이준기) 명품 걷기 클럽인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떠났다. 완도항에서 50분 정도 배를 타고 닿은 청산도, 느림의 섬을 상징하는 달팽이 형상의 조각물이 가을비와 함께 우리를 반겼다. 청산도 걷기 트레킹은 1박 2일로 하는 것이 좋지만 우리 일행은 당일치기로 일정을 잡았다. 열한 개의 코스로 된 ‘청산도 슬로길’ 중 서편제길-화랑포길-사랑길인 1, 2코스를 선택했다.

미항길과 도락리를 지나 서편제길로 곧장 갔다. 서편제 영화를 본 뒤 가슴에 담은 감동과 충격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찾아왔던 이 길, 그땐 팍팍한 황톳길이었다. 모퉁이를 돌 때 여기저기 박힌 돌부리한테 안부를 물으면 대답 대신 탐방객들에게 진도아리랑 가락을 들려주는 것처럼 구성진 길이었다. 세 번째 찾은 지금은 황토빛 시멘트길로 바뀌어 있다. 처음 찾았을 때와 색깔은 같지만 느낌이 달라진 것이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5분여 동안 롱테이크 기법으로 촬영한 그 장면과 그때 세 사람이 얼려 불렀던 진도아리랑 가락은 이곳을 찾을 때마다 필자의 귀와 눈 속에 감동으로 재생된다.

 
   
▲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들이 열연을 보여줬던 촬영지.


◇스치면 인연, 스며들면 사랑

‘서편제’와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는 인접해 있다. 도락리 앞바다에 마치 수중아파트처럼 자리잡은 전복양식장 또한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명당자리에 꼭 한번 보고 싶어했던 초분(草墳)이 조성돼 있었다. 실제 무덤은 아니고 탐방객들에게 섬의 장례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실제 초분 크기로 만들어 놓은 가묘였다. 주로 서남해안 섬지역에서 행해지던 장례문화인 초분은 시신을 땅에 바로 묻지 않고 관을 땅 위에 올려놓은 뒤 짚이나 풀 등으로 엮은 이엉을 덮어두었다가 2~3년 뒤 뼈를 골라 땅에 다시 매장하는 방식이다. 남정네들이 바다로 나가 절대적으로 일손이 부족했던 섬지역에서는 초분은 필수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환경에 맞춰 새롭게 생성되는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것도 걷기를 통해서 터득할 수 있는 보너스다.

탐방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서편제길과 봄의 왈츠 촬영지를 지나 화랑포길까지 이어지는 1코스와 좁다란 숲길로 이뤄진 사랑길을 달팽이걸음으로 세 시간 정도 걸어서 다시 청산도항으로 돌아오는 슬로길. 곳곳에 느림의 미학을 엿볼 수 있는 조형물들이 많았다. 화장실도 달팽이 형상으로 만들어 놓았고 안내표지판에서도 역시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는 상징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도락리 갤러리길 담벼락에 그려놓은 그림과 글씨는 아무리 마음이 급한 사람이라도 잠시 머물게 하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아 놓았다. ‘스치면 인연, 스며들면 사랑’, ‘꽃이 봄에 물들 듯, 나는 너에게 물들고 싶다.’,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니체-’.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이나 인연과 사랑을 떠올리게 하고 걷기의 위대함을 생각하게 한다.

바쁜 일상을 잠시 잊고 이곳의 풍경과 느림의 문화에 동화되다 보면 모두가 이곳을 닮아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몸에 배어 행복감이 저절로 넘쳐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걷기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나 특정한 곳을 답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청산도 순환버스를 타는 것을 권장하고 싶다. 구들장논, 고인돌, 하마비를 답사하고, 섬 전체를 일주하며 청산도의 빼어난 절경을 두루 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특히 구들장논은 논바닥에 돌을 구들처럼 깔고 그 위에 흙을 부어 만든 논으로 자투리땅도 놀리지 않았던 섬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2014년 국내 최초로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로부터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받아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바가 있는 훌륭한 농업유산이다.

 
   
▲ 탐방객들을 위해 실제 크기로 조성해 놓은 초분.


◇걷기, 행복을 낳는 황금알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그 명상에서 돌아올 때면 가끔 사람이 달라져서 당장의 삶을 지배하는 다급한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시간을 그윽하게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에서-

6시간 정도 머물다 온 청산도, 서편제에서 유봉과 동호, 송화가 살아온 날의 ‘한’을 짜내어 진도아리랑의 ‘흥’으로 승화시켜 놓은 길을 느리게 걸으면서 전에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발과 다리, 몸을 통해서 무궁무진한 감각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림을 경험하게 됐다. 그 걸음을 빨리빨리 문화의 대명사로 꼽히는 ‘자동차’로써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경험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는 ‘오래된 미래’에서 라다크에서의 삶을 인간의 미래형 삶으로 제시해 놓았다. 물질적인 욕망, 불관용(不寬容), 실업, 환경오염이 현대를 대변해주는 지금, 조금은 모자라는 생각과 더디고 느리게 걷는 발걸음이 생태학적 균형과 더불어 삶의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데 소중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박종현(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드라마 ‘봄의 왈츠’의 세트장
드라마 ‘봄의 왈츠’의 세트장.
도락리 앞바다의 전복 양식장 전경
도락리 앞바다의 전복 양식장 전경.


도청리 담벼락에 새겨놓은 명언
도청리 담벼락에 새겨놓은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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