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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0월 22일 영화산업사 석유곤로
박은정  |  gnnew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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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07  19: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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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중)

서민 겨울 필수품 구공탄을 아시나요

흔히들 겨울을 낭만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불과 40여년 전만해도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지긋지긋한 계절이었다. 
춥고 배고픈 긴 겨울을 탈 없이 무사히 넘기기만을 바랐던 시절이 있었다.
서민들의 월동준비라고 해봐야 김장 몇 포기와 연탄(구공탄) 몇 십 장만 있으면 겨울 걱정 않고 지난다고 하던 시절, 연탄은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저렴한 가격에 두 세장이면 하루 종일 방안가득 온기를 품을 수 있어 국민연료이자 겨울 필수품이었다. 
 겨우내 쓸 연탄을 창고 가득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은 서민들에게 중요한 월동준비였으며 쌓아둔 연탄의 개수가 부의 척도가 되기도 했다. 또 연탄은 난방용뿐만 아니라 음식조리에도 쓰였기에 사계절 내내 필수불가결한 연료였다. 
간혹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사망하는 일이 더러 발생해 그야말로 ‘밤새 안녕하십니까’가 농담이 아닌 진담이 되기도 했다. 당시 신문에는 연탄가스 사망기사가 자주 실렸고 집집마다 연탄가스 중독에 대비해 동치미 국물을 담가놓기도 했다. 
너도나도 연탄을 때던 그 시절 전국에 연탄공장만 400여개가 있었고 동네마다 연탄가게 하나씩은 있었지만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아 겨울만 되면 늘 연탄파동을 겪기도 했다. .

처음 우리나라에 연탄이 소개된 것은 1920년대로 일본으로부터 수입해 사용했다. 그러나 60년대까지도 연탄보다는 장작을 때는 가정이 더 많았다. 정부의 산림보호 정책으로 연탄 사용을 권장하면서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1988년에는 전체 가구의 88%가 연탄을 주연료로 사용했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석탄중심에서 석유중심으로 바뀌고 연탄의 전성기도 저물어 석유로 대체되기 시작한 80년대 후반부터는 석유보일러와 도시가스에 밀려나는 신세가 되어 점차 그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2000년대 들어서는 2% 수준으로 급감했지만 아직까지도 서민 연료의 대명사하면 ‘연탄’이 바로 떠오른다.
최근엔 복고풍 컨셉의 음식점 등에서 연탄의 사용이 늘고 있기도 하다.  편집부 박은정

   
▲ 1967년 10월 22일 영화산업사 석유곤로 광고, 경남일보 그때 그시절

1967년 10월 22일 영화산업사 석유곤로
연탄불로 밥을 해먹던 주부들에게 강력함과 편리함으로 무장한 석유곤로가 등장했다. 경제적이고 안전하며 견고하기까지 한데다 취사온돌겸용이란 문구는 주부들을 유혹하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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