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 복제 시대 인생의 의미
김성영 (시조시인·고금논술학원장)
[경일춘추] 복제 시대 인생의 의미
김성영 (시조시인·고금논술학원장)
  • 경남일보
  • 승인 2016.11.0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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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영
옛날에 어떤 왕이 세상의 모든 권력과 금은보화를 가졌음에도 행복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불행해지자 궁정 요리사를 불렀다.

“50년 전 선왕과 나는 전쟁에서 패해 밤낮으로 도망치던 중 컴컴한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허기와 피로에 지쳐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작은 오두막을 발견했지. 그 오두막의 노파가 우리에게 만들어준 산딸기 오믈렛을 한 입 먹자마자 기적처럼 힘이 되살아나고 새로운 희망이 샘솟았다네. 그 노파의 산딸기 오믈렛과 같은 요리를 해주면 그대를 사위로 맞아 후계자로 삼겠지만, 나의 기대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면 그대는 죽어야 하네.”

“폐하, 정 그러시다면 당장 저를 죽이십시오. 제가 아무리 뛰어난 솜씨로 산딸기 오믈렛을 만들더라도 폐하의 입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폐하께서 그 당시 드셨던 모든 재료와 양념을 제가 무슨 수로 마련하겠습니까. 전쟁의 위험, 쫓기는 절박함, 부엌의 온기, 휴식의 달콤함, 어찌될지 모르는 어두운 미래, 이 모든 분위기는 제가 도저히 마련할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가 함축하고 있는 인생의 의미는 경험의 정체성에 의한 개인의 실존적 가치이다. 왕의 요구가 실현되려면 요리사의 말대로 당시 상황이 완벽하게 재현돼야 한다. 50년 전으로 왕은 젊어지고, 선왕과 노파는 환생하고, 전쟁에 패해 쫓기며 길을 잃고 기진맥진한 채 오두막을 만나고….

설령 타임머신을 타고 그 상황으로 돌아가서 그 맛 그대로 다시 경험할 수 있다 한들, 한 번 만족하고 나면 자꾸 반복하게 되어 그 맛의 한계효용이 체감되면서 본래의 경험조차 가치를 잃고 심드렁해져 버릴 것이다. 단 한 번뿐인 순간들의 연속으로 이뤄지는 개인의 인생사는 어느 한 순간이라도 두 번 다시 반복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는 고유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왕은 온갖 산해진미와 안락한 생활에 젖어 배부른 불평만 할 게 아니라 백성들의 삶을 좀더 가까이서 살피면서 그들의 허기와 피로를 덜어주는 선정을 펼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하루하루가 알찬 의미를 지니게 되고, 당연히 어떤 음식도 맛이 좋을 것이다. 무한복제 시대일수록 인생의 참된 의미와 행복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김성영 (시조시인·고금논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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