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7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71)
  • 경남일보
  • 승인 2016.10.0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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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271 사본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71)



“씨내림의 문제보다 여자의 권능을 장악하기 어려운 자신들의 한계 때문에 남성들은 그토록 봉건적인 장부를 설정해 놓고 여자들을 속박해 왔었던 거고. 그것 역시 양반 신분에 한이 된 윗대의 어떤 할아버지가 돈을 주고 산건지도 모르잖아. 그게 혈족을 증명하는데 무슨 그리 큰 의미가 있어? 우리가 어디 진돗개 같은 짐승처럼 혈통 증명서 제출할 일 있어? 그 따위에 연연할 것 없어. 마음이 양반이면 그냥 양반인거지. 언니 마음속에 담겨 있는 마음의 족보만으로도 핏줄 확인은 충분해. 사람들이 짐작하듯이 내 속에는 언양할머니가 받아들인 최 씨의 피가 아닌, 엉뚱한 치한이나 또 하다못해 그 지역에 와서 얼쩡거리던 아이누족의 떨거지나 혼혈인 뱃놈의 피가 섞여있다 해도 상관하지 않을 거야. 어떤 생각 어떤 행동으로 사느냐가 문제지 현대 사회에서 누가 조상이고 아니고가 도대체 무슨 싸움거리야? 지금 와서 그걸 밝히기 위해 조상의 무덤이라도 파헤칠 거야 뭐야. 또 그래 본들. 우린 그런 쓰잘 데 없는 것들 따지기 좋아하다가 망한 족속 아니가? 이런 우스운 말이 있는데 언니가 알란가 몰라. 사촌 중에, 가장 확실한 사촌이 누군지 모르지? 성이 같은 친사촌도 아니고, 외사촌도 고종사촌도 아니고 가장 확실한 사촌은 이종사촌 밖에 없단다.“

끝은 우스개로 마무리 했지만 양지는 그만 조금씩 맥이 풀려버렸다. 많이 안다는 것은 많은 불평불만 속에 놓여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명자의 동그란 얼굴 속에서 그런 감이 전해왔다. 복잡한 생각으로 휘둘리지 않는 사람은 신중하고 평탄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자신은 갈등과 곤혹과 맞서느라 망나니처럼 굴게 되는 것이다. 신중할 겨를 보다 신속함에 그녀 자신은 치우쳐있었다. 다시 덧붙이려다 자른 말들이 입속에서 맴돌았다.

‘나는 단일민족이라고 고집하는 순혈주의의 옹고집을 비웃는다. 수많은 외세의 침탈로 점철되어 있는 우리들의 역사를 조금만 염두에 떠올리면 굳이 대답할 필요도 없지 않느냐’

이 마당에 이게 무슨 소용일까 싶었지만 무엇으로든 자신의 존재감을 표출하고 싶은 간절함 때문에 양지는 언젠가 제가 읽었던 책 속에 있던 한국성씨 탄생의 비밀이라는 내용을 일부 들려주었다.



”그 족보라는 게 언제 만들어졌는가 하면 중국 한나라 때란다. 이는 천자가 각 제후나 공신들의 자제들에 대한 특별 관리를 위한 것이었는데 그때부터 천자가 만든 족보에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가 권력의 유무를 판별하는 중요한 잣대로 삼았대. 원래 성씨가 없던 우리나라의 토착민들도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서 일부 고위 관리들에게 성씨를 가진 이들이 간간이 생겨났고 삼국시대 말기 신라에서 국력의 세계화를 기치로 내걸고 왕족을 중심으로 성씨를 스스로 만들어서 가졌다고 해. 그래서 왕족들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죽고 없는 윗대 조상님들, 혁거세나 알지, 등에게도 소급해서 성씨를 만들어 붙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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